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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3·11 이후 1년’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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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현기
도쿄 특파원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흔들림에 놀랐던 날부터 1년이 지났다. 11일 요미우리(讀賣)신문 사회면의 ‘돌아오지 않는 그대에게’란 기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치원생이던 딸 아이리(愛梨·당시 6세)에게 보내는 어머니(37)의 편지였다. “아이리, 내게 늘 건네던 ‘엄마 사랑해’란 편지, 그림들…. 아이리 몰래 버렸던 것 미안해. 그땐 앞으로도 영원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유치원 졸업식 때 ‘엄마, 늘 사랑을 듬뿍 줘 고마워요’라고 말하려 했었다며? 선생님께 들었단다. 아이리는 6년 동안 평생분의 사랑을 엄마에게 줬던 거구나. 아이리는 평생 엄마의 보배란다.”

 일본 열도 전체가 복구를 외치며 하나가 된 1년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변한 건 거의 없어 보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그렇다.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현장은 여전했다. 마을 곳곳에 수십m 높이의 쓰레기 산이 있을 뿐 폐허에 가까웠다. “방사능 공포 때문에 쓰레기를 받아줄 곳이 없다”(리쿠젠타카타시 도바 후토시 시장)는 설명이었다. 행방불명자도 여전히 3155명이나 된다. 피난 생활을 하는 이는 34만 명. 이 중 직장을 잃고 재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40%다.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에서 만난 한 60대 재해 주민의 “결국 당한 사람만 불쌍한 거지…”란 말이 가슴을 메게 했다.

 지난 1년은 일본이 자랑하던 ‘안전신화’와 ‘고정관념’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했다. 그걸 깨달은 것 자체가 일본에 큰 교훈일지 모른다.

 지난달 28일 ‘3·11 민간조사보고서’ 발표장에서 만난 기타자와 고이치(北澤宏一) 독립검증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독백을 했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모두가 ‘개인적으론 (원전의) 안전대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 말한다 해서 바뀌겠나란 생각에 눈치만 봤다’고 한다. 눈치만 보는 사회는 원자력같이 규모와 위험이 크고 복잡한 기술을 안전하게 운영할 ‘자격’이 없다.”

 11일 오전 TV에 출연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보통 일본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그동안 정부에선 ‘일본은 원자력 없인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54기의 원전 중 2기만이 가동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누가 우리를 속였던 것이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1년의 세월은 마이너스를 제로로 돌려놨다. 이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웃 나라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