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삶, 그리고 취향이라는 잣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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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31면

긴 여행을 위해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려던 중이었다. 문득 이 항공사가 내 짐을 제일 많이 잃어버리는 단골 항공사라는 걸 의식하고는 부리나케 여기저기 붙어 있던 이전의 짐 표(tag)들을 떼기 시작했다. 직원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키지만 나는 잠자코 더 붙어 있는 건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봤자 사람이 직접 하는 거면서…’.

항공사에서 부치는 짐들은 공항 뒷머리 어딘가의 엄청나게 큰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짐 표들을 자동으로 스캔당한 후 로봇 팔에 의해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분류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짐 표가 붙여지고 이 직원 저 직원의 손을 거쳐 육안으로 감식되어 그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비행기로 옮겨질 것이다. 언제라도 실수가 발생하고도 남을 수 있음직하다. 암만 생각해도 구시대적인 작업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불현듯, 그렇다면 사람이 직접 하지 않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무서운 정밀도를 자랑하는 자동화 공장도 정작 최종 검열은 숙련 전문가들의 육안으로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인 것 같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어린 시절 나는, 낯선 사람만 보면 무조건 울어대 어디에도 데리고 나갈 수 없는 아기였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나는 반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기 시작했는데, 다섯 살 어느 날은 피아노학원으로 향하던 길에 횡단보도에서 대형 덤프트럭이 오고 있는 걸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너다 이 트럭이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며 급정거를 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다 젖었지만 입 밖으로는 찍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나는 그 트럭보다 내가 울었을 때 나에게 던져질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려운 꼬마였다. 7년 동안 나를 가르친 피아노 선생님이 내 목소리를 모를 정도였으니, 나의 낯가림은 타고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내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일이 바로 내 직업이다.

우리는 특별히 셀 수도 없이 많은 낯선 사람을 만난다. 연주라는 행위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의 시점부터 그 모든 행위가 마무리될 때까지. 나를 음악회에 초청하도록 만들어 준 매니저, 음악회를 연 주최 측 담당자, 함께 연주하게 될 동료 음악가들…. 매번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가장 끈끈한 친목을 도모해야 하는 게 이 일이다. 쉽게 말해 잘 지내고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지천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비인간적일 정도로 실력을 겨루도록 배워 실력이 좋은 아이가 더 잘난 사람처럼 평가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마치 부족한 사람처럼 매겨지는 실력지상주의적 겉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하다못해 그 실력이라는 것조차 무엇인가. 음악적 실력이란 기술적·예술적으로 어느 정도의 난이도가 달성되면 그 다음이야 모두 취향의 문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수준 높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내 입맛에 안 맞으면 말짱 꽝이듯 음악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느냐가 얼마나 널리 인정받느냐와 거의 상응한다. 하나 이 취향이라는 것이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게 아닌가. 때로는 선입견이, 때로는 기분이, 때로는 외적 환경이 이것을 결정짓기도 하니 말이다. 결국은 실력이라는 유일한 객관성마저 사람들의 ‘그것’에 십분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때때로 이것이 사람‘들’일 필요도 없다는 데 있다. 종종 ‘그’ 평론가 때문에 누구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고, ‘이’ 매니저 때문에 누구는 인생이 바뀌고, ‘저’ 지휘자 덕분에 누구는 앞으로 걱정할 일이 없겠더라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아무리 ‘천하를 감동시키는 일의 시작이 단 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랄지라도 가끔은 이런 주관성에 인생을 거는 우리 모두가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이게 음악가의 삶이려니 하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과연 음악가만의 삶일까? 하다못해 전자 바코드를 붙인 가방도 전날 잠을 못 자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직원의 손에 의해 다른 목적지로 가곤 하는데. 표면적인 인간관계가 지겨워져도, 이 모든 게 불공평하게 느껴져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뉴욕필과 협연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이다. 올해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했다. 음악듣기와 역사책 읽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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