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정현준 사건' 일파만파

중앙일보

입력

"너 떨고 있니, 나 떨고 있어. "

부도난 한국디지탈라인의 '정현준 파장' 이 정보기술(IT)벤처업계에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증권사.투자자 사이에선 원죄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꼬집는 '떨고 있니' 라는 유행어까지 나돌고 있다.

벤처업계에선 가뜩이나 침체된 벤처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라며 제2, 제3의 정현준이 터져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 성장의 엔진' 에서 '천덕꾸러기' 로 급전직하한 벤처업계를 두고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옥석을 가려야 할 때" 라고 지적한다.

김상우 icg컨설팅 사장은 "골드뱅크 등 무너진 1세대 원조기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며 "B2B(Back to the Basic)의 기본부터 충실히 하는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 말했다.

◇ 모두 떨고 있다〓요즘 벤처기업.증권기관.투자자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코스닥 붐이 일면서 벤처업계에선 껍데기 회사를 놓고 주식 시장에서 머니게임으로 돈을 챙기고,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 신흥 재벌에 등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대개가 재벌 못지 않게 거느리고 있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기업인수.지급보증 등의 수법으로 돈을 굴렸다.

한국디지탈라인은 대표적인 사례. 디지탈임팩트.동방상호신용금고.KDL창투.평창정보통신 등 10여 업체가 관계회사다.

인터넷에서 창투.금융기관까지 돈 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회사들이. 그러나 지난 3월 이후 주식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자금난에 부닥치자 회사는 부도나고 정현준 사장은 자신이 소유한 신용금고에서 불법대출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증권업계나 감독기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사실 여부를 떠나 벤처기업에 대가를 받고 봐준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鄭사장의 폭탄발언에 이어 H.S.K증권 등이 한국디지탈라인을 부도 직전 'M&A 관련 투자 유망종목' 으로 추천해 의혹이 일고 있다.

◇ 제2의 '정현준' 〓최근 자금난에 빠진 몇몇 중견 기업들은 연말까지 수백억원의 대출상환금이 돌아오거나 벌려놓은 사업이 신통치 않아 부도 직전이라는 루머까지 돌 정도다.

이들 기업은 한국디지탈라인과 비슷한 유형으로,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지주회사를 통한 수십여개의 관계회사를 거느리는 등 준(準)재벌화했다.

A벤처그룹의 경우 지난해부터 20여 기업으로 이뤄진 사단을 일구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로 인해 연말까지 금융권에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이 7백억원에 이른다. 최근 관계회사의 지분을 내놓았으나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해진다.

20여사에 지분을 투자한 B사는 인터넷 업계에선 내로라하는 머니게임 전문그룹. 이 회사 대표는 지난해 말 액면가 5백원짜리 주식을 1백20배수까지 튀겨 40억원 가까운 돈을 챙겨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비현실적인 공시를 하거나 작전 세력을 동원해 주식을 정기적으로 샀다 팔면서 주가를 조작했으며, 거액의 리베이트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인수한 무명의 부품업체를 IT의 '황제주' 로 키운 C사도 8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잘 나가는 중견 벤처기업이었다.

그러나 자사의 주식을 인수 대상 기업의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몸집만 키워 놓았다가 최근 주식 시장이 무너지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전해진다.

◇ 어떻게 푸나〓기업.증권.투자자 등이 앞장서 왜곡된 시장을 벤처 발전의 장으로 돌리는 게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권남훈 박사는 "벤처의 문어발식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한국디지탈라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분별한 타법인 출자와 재테크를 위한 투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서울대 신기술창업네트워크의 이준식 소장은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는 국내 닷컴에 대한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 며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올바른 벤처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화 연구원은 "지주회사형 벤처기업은 대부분 대주주가 자금을 관리해 독단적인 회사경영이 가능해 문제가 있다" 며 "특히 대주주가 계열사 자산을 편법으로 유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고 충고했다.

이승녕.원낙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