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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경험한 환자의 ‘저 세상’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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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승철
큰사랑 노인 전문 병원장

# 사고가 일어나자 바로 제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르더군요. 제 몸이 얼마나 가볍던지 아득한 하늘로 날아오르는 거였어요. 주변을 보니 큰 별들이 떠 있고. 그 별들을 보자 거기에 가고 싶었죠.

그러자 그 생각대로 그 별에 어느새 근접했고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림 같은 초원이 펼쳐졌죠. 정말 평화로운 곳이라, 내려가고 싶었는데 저절로 초원 위로 내려가졌어요.

한데 바로 그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거기 와 계셨네요. 아버지는 “막내 네가 돌아왔구나. 그런데 네가 여기 어떻게 왔냐?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빨리 돌아가야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아버지께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 여긴 어딘가요?” 이 말이 떨어지자 어느새 바로 그 곁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내가 같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내는 10년 전 자궁암으로 사망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두 분은 말없이 그를 쳐다만 보고 있다. 아버지는 조금 있으면 ‘구멍’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네가 들어갈 ‘틈’이 없으니 어서 서둘러 나가라고 독촉하신다.

이런 경황 중에도 그는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런데 아버지, 제 몸이 여기 있는데, 제 몸이 없어져서 여기 온 겁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며, 이유는 묻지 말라 하시며, “가기 전에 여기나 한번 구경하라”며 커튼을 활짝 열어 젖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때까지 평화롭던 풍경은 간 데 없고, 세찬 눈보라 치는 가운데 바들바들 떨고 있는, 헐벗고 야윈 사람들만 보이는 게 아닌가. 그곳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고통과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들이 누구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세상을 일찍 포기하고, 악을 짓고,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저렇게 고생한단다. 저 사람들은 이곳에서 최소 20년은 저렇게 고생한다.” 그는 그 후 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눈을 떠보니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취급돼 자신의 몸이 하얀 시트로 덮여 있음을 알았다.

 # 교통사고를 당한 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환자의 얘기다. 이처럼 사고로 죽었다가 ‘저 세상’ 구경 한 번 하고 나서 깨어난 경험을 일컬어 임사(臨死)체험이라 한다. 일찍이 스웨덴의 저명 영성신학자였던 E 스웨덴보리 역시 그가 직접 겪은 사후의 장대한 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죽음의 리허설인 임사체험. 이 체험자들은 신묘한, 그 충격적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제껏 연구에서 보고된 바 그 체험자들은 그 후 인생관에서의 큰 변화를 말한다.

예컨대 신은 친근한 빛 같은 존재다, 생명에 대한 존경심과 이타심이 생겼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한다. 임사체험이 깨달음이란 뜻은 없지만, 그 입문쯤은 된다고 봄이 적절한 해석일 듯싶다.

 어떤 학자는 임사체험을 두고, 마치 간질처럼 뇌 내 화학적 변화로 인한 환각작용이라 보기도 하고, 대뇌 변연계(본능 충동 담당의 뇌 부위)에 엔도르핀이 활성화된 탓이라 유추도 한다. 어디까지나 꿈같은 상태라 보고,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정해진 학설은 없다. 그러나 나는 각자의 ‘현실체험설’을 받아들인다. 사후에도 생명 에너지의 주체 격인 영혼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R 도킨스 같은 진화생물학자나 유물론자들은 이런 경험을 분명 환각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임사체험은 사람마다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개인의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신념이나 종교적 가치관 등을 포함한 의식 수준도 다르기에 ‘저 세상’의 경험도 분명 차이는 있다. 하나 큰 줄거리는 유사하다.

 나는 인간을 초월한 실재계가 있다는 선택을 한다. 유물론 신봉자들이 뭐라 하든 그것 역시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무신론에 대한 철학적 논증도 그리 미덥지가 않다. 길지 않은 인생,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신의 체험에서 오롯이 그 의미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신승철 큰사랑 노인 전문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