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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에게서 배우는 고전속 '옥의 티'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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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로 글의 허두를 떼려 합니다. 루터는 중세 교부(敎父)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민중의 손에 돌려준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 때 루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성경은 아기 예수가 누운 말 구유와도 같다. " 무슨 얘기냐면, 말 구유에는 필요없는 검불도 섞여있을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이죠. 도올 김용옥의 신간 〈도올 논어1〉을 리뷰(18일자 17면)하면서 기자는 〈논어〉앞대목에 대한 주해(註解)를 그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평가했습니다.

왜 그것이 하이라이트인가를 지금 밝힐 참입니다. 이를테면 도올은 고전 중의 고전인 논어의 권위 앞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우리 눈의 콩깍지' 를 벗겨내는 당당한 시범을 보입니다. 주해 하나를 음미해보겠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날마다 세가지로 내 몸을 성찰한다(吾日三省)' 로 시작하는 증자(曾子)의 어록 대목. "남을 위해 도모함에 불충(不忠)은 없었나. 벗을 사귐에 있어 믿음이 없었나. 가르침을 받은 것을 익히지 못하였나?" 도올은 한마디로 이 말이 도무지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삼성(三省)이라는 표현은 꼭 유치원생 교육 같다. 논어 전체를 통해 숫자가 미주알고주알 나오는 대목은 대개 후대의 날조이기 십상이다. 공자 후대의 천박한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어떻습니까. 과감한 문제 제기지요?

이 대목은 〈도올 논어〉의 핵심으로 막바로 직결됩니다. 즉 이 증자라는 위인이 유교 역사에서 문제가 된다는 판단이지요. 증자는 누구입니까. 공자와 46세나 나이 차이가 있는 공자 말년의 제자였죠.

공자가 "증자는 머리가 나쁘다(魯)" 고 까지 했으나 후대 들어 아연 '효경(孝經)' 의 저자로 떠받들어지는 위인이기도 하구요. 즉 공자가 죽은 오래 뒤 '협애한 도덕주의자' 맹자가 이 증자를 등에 업었고, 그 과정에서 유교가 도덕주의로 굳혀지는 첫 단추가 끼워진다는 겁니다.

기자는 이 대목을 되풀이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누구라도 독자적인 안목이 있다면, 복잡한 텍스트 형성 과정을 거쳐온 고전을 창조적으로 읽어낼 수도 있구나 싶었던 것이죠.

이런 생각이 생뚱맞은 것만은 아닌 것이, 바로 지금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명청(明淸)시대 유물전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실은 연암 박지원이나 추사 김정희가 중국 땅에 가서 평생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 그토록 오매불망했던 명품 들입니다.

한데 요즘 우리는 그 좋은 것들을 서울에 척 하니 앉아서 수십번이라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환경 덕분에 세상이 엄청 좋아졌다고 봐야죠.

고전을 읽는 행위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망치를 든 철학자' 인 니체가 그 망치로 '더 이상 맞지않는 옷' 이 된 서양의 지적 유산을 앞뒤 안보고 후려쳤듯이, 전통의 무게에 눌려 거의 난장이 에피고넨이 돼 버린 우리들도 때로는 그 전통을 내리쳐 버리는 지적 용기를 가질 줄 알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전통을 제대로 재해석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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