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초심 잃은 민주당과 광주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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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구동회
JTBC 정치부 기자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3대째 광주에서 살고 있다는 토박이 김모(62·여)씨. 평소 광주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봉사활동 등 사회 참여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최근엔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적어도 광주 현지에선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서울 종로나 강남구가 아니었다. 시민항쟁으로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광주가 사실상 1번지라는 의식을 광주 시민들은 갖고 있다. 그런 광주가 민주통합당의 국민참여선거경선인단 불법 모집 시비로 술렁인다.

 민주당의 불법 선거인단 모집 사례는 동구뿐만이 아니었다. 서구·북구 등 광주 전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현지에서 만난 광주 시민들은 직접 보고 들은 불법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더구나 “동구청 사건 이후로 서로 감시하는 눈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웃의 정까지 흔들고,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고 있다.

 광주 시민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하는 대목은 이러한 선거인단 불법 모집이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나 노인 등 사회 약자 계층을 상대로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자체장 등이 개입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삶의 바닥으로 추락해 정부 지원밖에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의 ‘밥줄’을 인질 삼아 공천 욕심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광주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라는 분노도 느낄 수 있다.

 선거인단 모집책의 투신사건이 일어난 동구는 ‘광주의 정치 1번지’로 통하던 곳. 이곳 동구도 최근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고 지역경제가 침체되면서 공공기관에 의지하는 주민이 늘어났고, 이는 관권선거를 보다 수월하게 만드는 배경이 됐다.

 동구에 살면서 불법 대리접수에 동원됐다는 한 자원봉사자는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인증번호만 확인해 한 사람이 수십 명을 인터넷을 통해 선거인단으로 등록하는 것을 직접 봤다”며 “나도 내 딸을 대리등록하려고 갔다가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발길을 돌렸다”고 증언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참여경선을 자랑하고 있다. 전국에서 경선에 참여하는 국민 수가 100만 명이 넘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불법으로 모집한 선거인단이 몇 명인지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경선 일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도 이 부분이었다.

 광주에서 만난 다른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그냥 눈감고 지나가려 한다. 광주 시민은 바보가 아니다.”

 민주당이 가야 할 길. ‘경선 자랑’보다는 ‘초심 회복’이 먼저다.

구동회 JTBC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