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선 쟁점되는 탈북자 강제 북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 인권단체도 항의 집회 미국 인권단체 회원들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주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탈북 여성의 얼굴을 가린 채 두 손을 포박해 끌고 가는 중국 공안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주요당직자회의에는 60대 탈북자 김춘애(가명)씨가 참석했다. 탈북했다가 2000년 강제북송된 뒤 겪었던 고초를 증언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받고서다.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을 이어갔다. “보위부 종합지도원이 주먹으로 때려 앞니 두 개가 부러져 나갔다. 구둣발질을 당한 임신 6개월 된 여성이 실려가는 것도 봤다. 발가벗겨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하고, 중국에 가기 위해 돈을 감춘 게 나올 수 있다며 항문을 들여다본다. 5평(16.5㎡) 정도 되는 곳에 20명씩 가둬두는데 이와 빈대 때문에 잘 수가 없어 창문에 박쥐처럼 매달려 잤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이 김씨의 증언을 청취한 것은 탈북자 문제를 4·11 총선 이슈로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일부 의원들은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에 이어 릴레이 단식농성을 하기로 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북한 인권결의안이 통과되는 12일 이전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미국·EU(유럽연합) 측 대표를 만나 설득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국회 안에 ‘탈북자 대책 특위’도 만들 예정이다. 황 원내대표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 국경으로 탈북자들이 넘어올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탈북자 문제를 민주통합당 비판 소재로 사용한다는 전략이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 기지와 관련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목청을 높이던 야당이 탈북자 문제엔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입만 열면 인권 얘기를 해오던 사람들의 눈에 탈북자의 인권은 보이지 않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은재 당 탈북자위원장도 야당을 겨냥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라고 공격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간사인 구상찬 의원은 “인권 문제에 촛불을 그렇게 많이 들이대던 민주통합당 인사들이 (탈북자 문제에선) 안 보인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23일 당 소속 의원 89명이 서명한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 외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일 대북 정책을 발표하면서도 탈북자 송환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이런 소극적인 자세에 대해 정치권에선 “통합진보당(과거 민주노동당)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 연대에 얽매이는 바람에 좌파가 불편해하는 북한 인권문제에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유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