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심장에 박혀버린 가시 뽑아버리자 내 말 그저 들어주는 친구들 있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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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3월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헤집고 푸릇푸릇 새싹이 돋을 겁니다. 생명과 부활의 시기입니다. 굳이 인생에 비유하면 청춘쯤에 해당할까요. ‘88만원 세대’의 힘겨움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단한 현실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겠죠.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3월의 주제는 ‘열려라, 청춘의 문’입니다. 젊음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한국 소설을 골랐습니다. 우리의 오늘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비룡소
289쪽, 1만1500원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해일이 나지막이 읊조린다. 재빠르지만 우아한 손놀림으로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훔치고, 같은 반 친구의 전자수첩을 훔쳐내는 타고난 도둑.

 도둑이라니. 독자는 필시 그의 집안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해일, 평범한 학생이다. 그의 집, 화목하다. 다만 어른들이 짐작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여리고, 아주 작은 상처도 가시처럼 박혀 곪아버리니 그저 ‘화목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 뿐. 한국 청소년문학을 열어젖힌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의 새 소설 『가시고백』은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천재 도둑 해일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지란, 욕쟁이 진오, 짝사랑 베테랑 다영. 이들은 모두 외롭고, 할 이야기가 많지만 선뜻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런데 해일이 유정란을 닭으로 부화시키기로 한 어느 날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따뜻한 밥상이 차려진 해일의 집에서 부화한 병아리를 보며 이들은 상처를 굳이 꺼내어놓지 않고도 치유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도둑은 고백을 마음 먹는다.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 터지기 전에. 이제와 헤집고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렵지만,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해일은 뽑아낸 가시에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고백을 마음 먹자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다.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됐다. 그의 곁에는 그저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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