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마흐말바프가의 가족시네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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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폐막된 부산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은 예상했던 대로〈내가 여자가 된 날〉을 만든 이란의 여성 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에게 돌아갔다.〈내가 여자가 된 날〉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억압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영화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를 만든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이번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마흐말바프가의 한 사람이자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가족 모두가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때문에 마흐말바프 가족들은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모흐센 마흐말바프(43)
, 마르지에 메쉬키니(31, 부인)
, 사미라 마흐말바프(20, 큰 딸)
, 메이삼 마흐말바프(19, 아들)
, 하나 마흐말바프(12, 막내)
로 구성된 마흐말바프가는 카메라를 마치 펜처럼 사용하면서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는 가족이자 집단영화 제작소이다.

모흐센의 말을 빌자면 마흐말바프가의 영화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찬 반응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의 영화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다. 일상적인 인간의 행위는 지리학적인 한계에 머물 수 밖에 없고, 그것에만 관심을 보일 때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일 때 진정한 의미의 창조가 발생한다.

사미라의〈칠판〉에서 무거운 칠판을 등에 메고 고산 지대를 오르는 선생들의 모습은 놀랍고 영웅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가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놀라움은 교사들의 행위와 쿠르드 난민들(노인과 아이들)
의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다. 교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려 노력한다. 처음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주목하지만 이내 지뢰밭을 피해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에서 밀수품을 나르는 힘겨운 아이들과 고향인 이라크에서 삶을 마감하기 위해 여정을 벌이는 노인들의 삶과 만난다. 우리는 그들의 반응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흐말바프가의 영화는 행동이 주가 되는 영화가 아니라 반응의 함수를 통해 행동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영화다. 모흐센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누구나 창조자이며 그들은 또한 예술가라고 말한다. 그래서〈가베〉에서 가베(거칠게 짠 카페트)
를 짜는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사물을 만드는 창조자이자 예술가이다. 이런 창조의 과정은 노동과정일 뿐만 아니라 유희의 과정이다.〈이모가 아팠던 날〉에서 아이들은 카메라를 갖고 논다. 노동과 유희가 만나고 이런 만남을 통해 예술적인 창조가 발생한다.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그들의 영화 제작 방식과 영화관은 역설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터운 믿음과 확신을 갖게 만든다. 모흐센은 인터뷰에서 '나는 카메라를 펜처럼 사용했다. 글을 쓰듯 누구나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지털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영화의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디지털의 발전이 정치 세력, 자본, 제작 수단의 집중이라는 세 가지 외적 통제 양식의 제약을 탈피하게 만들고 예술로서의 영화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가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조작이 쉬운 디지털 카메라의 용이성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예전이 느꼈을 기술 공포증을 해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마흐말바프가의 거침없는 생각과 말은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사미라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인상적이다: "영화는 소멸될 운명인가? 프랑수아 트퓌포는 영화의 출현으로 인한 문학의 죽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트뤼포가 지금 살아 있다면 디지털 작가의 손에 죽음을 맞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다시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까? ... 20년전에 누가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면 사람들은 기술적인 면을 아는지 물었을 것이다. 모른다고 하면 영화 예술의 절반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에 대답해야 할 유일한 질문은 '말할 것이 있는가?'일 것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cinefantom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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