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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대지진 당시 총리실 "도쿄까지…" 한때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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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도쿄전력 직원들이 28일 후쿠시마 제1원전 프레스투어 도중 지붕이 날아간 1호기 앞에서 수습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쿠마(후쿠시마현) AP=연합뉴스]
간 나오토 전 총리

“유치하고 벼락치기식 위기관리로 일관한 ‘인재(人災)’였다.”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福島) 제1 원전 사고 발생 1년을 맞아 일본의 최고 민간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다. 기타자와 고이치(北澤宏一) 전 과학기술진흥기구 이사장 등 6명의 위원과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프로그램 디렉터로 참여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독립검증위원회(이하 조사위)’가 29일 발표한 ‘조사·검증 보고서’의 내용이 파문을 낳고 있다. “당시 총리 관저에서 도쿄도 피난 범위에 들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한 발짝 잘못 움직였으면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었으며, 이 나라는 역시 신이 돌보시고 계시다는 걸 느꼈다” 등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조사위는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경제산업상을 비롯한 정부 수뇌와 후쿠시마 제1 원전 종사자, 과학자 등 300명을 10개월에 걸쳐 직접 만났다. 정부나 도쿄전력의 검증작업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배경이다. 다음은 새롭게 밝혀진 내용과 조사위의 평가 및 제언.

 ◆사고 현장 방문 고집한 간 총리=지난해 3월 11일 밤 후쿠시마 원전에 대체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간 총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실무자에게 “필요한 배터리의 크기는? 가로·세로 몇 cm? 무게는? 헬기로 나를 수 있나?”라며 다그쳤다. 옆에 있던 비서관들과 실무자들은 이후 간 총리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에 대해 사전조율까지 하게 됐다.

 그 다음 날 오전 간 총리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헬기 편으로 후쿠시마 원전으로 향하려 하자 현장의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소장은 “내가 지금 총리를 맞이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라며 TV 화상회의를 통해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간 총리는 굽히지 않고 현장을 방문했다. 헬기 안에서도 현지 상황에 대한 우려를 설명하려는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원자력안전위원장에게 “내 질문에만 답하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후 마다라메 위원장은 12일 오후 3시36분의 원전 1호기 폭발 때, 핵연료봉이 녹아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생긴 수소 폭발임을 알아챘지만 “그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간 총리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한 대목은 딱 한 가지다. 사고 발생 수일 뒤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 도쿄전력 사장이 에다노 장관 등에게 “현장이 여의치 않다. 철수하겠다”고 했다. 물론 시미즈 사장은 “일부 인력에 한했던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당시 총리 관저의 모든 관계자는 “전원 철수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간 총리가 버럭 화를 내며 시미즈 사장을 15일 새벽 총리 관저로 불러들여 “철수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조사위는 “결과적으로 도쿄전력으로 하여금 강한 각오를 갖도록 해 이번 위기대응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고 칭찬했다. 간 전 총리는 29일 보고서 발표 후 ‘자신의 입장’이란 발표문을 통해 “(지난해) 3월 15일의 도쿄전력 철수 저지를 높게 평가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지식도, 정보 제공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조사위는 “에다노 관방장관은 11일 사고 발생 뒤 2주일 동안의 기자회견에서 “(방사성 물질 방출은) 즉각적으로 인체, 건강에 해가 안 된다”는 말을 적어도 10번 했다”며 “국민들 사이에 정보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이 퍼졌다”고 진단했다. 조사위는 또 각료들의 ‘지식 부족’의 대표적 사례로 ‘스피디(SPEEDI) 시스템’을 들었다. 스피디란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예측하려고 만든 측정 시스템이다.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 관방부장관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고,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고백했고,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은 “스피디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정말로 형편없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조사위는 30년에 걸쳐 개발한 시스템이 “‘창고 속의 보배’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원전 사고 피해 도쿄 확산 예상=에다노 관방장관은 조사위에 “1(후쿠시마 제1 원전)이 망가지면, 2(후쿠시마 제2 원전)도 망가진다. 2가 망가지면, 이번에는 (이바라키현의) 도카이(원전)도 망가지는 ‘악마의 연쇄’가 일어난다고 우려했다”고 증언했다. 일 정부가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한 시기는 지난해 3월 14∼15일. 에다노 장관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상식적으로 도쿄까지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관저 핵심부는 이 같은 위기감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간 총리의 지시 아래 도쿄까지 대피 권역에 넣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권력 중심의 일부만 알았을 뿐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당시 총리 관저 관계자들은) ‘국민들이 패닉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고 하지만, 그런 과잉 우려는 총리 관저 핵심들이 ‘엘리트 패닉(Elite panic)’에 빠졌던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한심했던 도쿄전력=사고가 발생한 11일 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전원을 확보하는 게 제1의 임무였다. 냉각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서다. 총리 관저는 어렵게 전원 연결 차량을 수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도쿄전력은 11일 밤에서 12일에 걸쳐 “전원 차량에 연결하는 코드가 없다”고 했다. 에다노 관방장관은 조사위에 “솔직히 말씀드려 도쿄전력에 대한 불신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보고서는 “도쿄전력은 ‘예상 밖의 일’이라고 하지만, 도쿄전력의 예상이 틀렸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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