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달콤한 인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인간은 혀로 느끼는 맛 중에 특히 단맛에 강하게 이끌린다. 달기만 하면 맛있다 여기는 것이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동물이 단맛 나는 것에 집착을 보인다. 당류는 먹자마자 기운이 돋는 강력한 ‘에너지원의 먹이’이니 단맛의 무엇이 눈앞에 놓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부터 챙겨 먹게끔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맛은 가장 동물적인 맛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두유 전문 업체의 연구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국내에서 두유는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젖먹이들의 모유 대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애초 두유의 당도는 모유에 맞춰졌다. 두유가 분유 시장을 잠식하자 한 분유업체에서 두유를 내었다. 이 분유업체에서는 두유의 당도를 올렸다. 젖먹이들의 선택은 단호했다. 단맛의 두유를 입에 한 번 들인 후에는 모유 당도의 두유는 혀로 밀어내었다. 모유 당도의 두유를 내는 업체는 점점 시장을 잃어갔고, 마침내 이 업체도 당도를 올린 두유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입맛이 오염되지 않은 젖먹이도 단맛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 것이다.

 먹을거리를 파는 이들은 단맛에 대한 본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어느 것이든 조금씩 달게 해 맛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자나 패스트푸드에만 단맛이 첨가되는 것이 아니다. 식당의 한국음식도 대체로 달다. 찌개에도 설탕을 넣고 나물도 설탕으로 버무린다. 김치에 감미료를 넣는 것을 무슨 비결이나 되는 듯이 말한다. 소주에도, 막걸리에도 감미료가 들어간다.

 젊은이들의 길거리 음식은 설탕 범벅이다. 떡볶이도 달고 닭강정도 달고 짬뽕도 달다. 과일도 무조건 달아야 맛있다 하니 신맛과 향이 강한 품종은 도태된다. 사과, 배, 포도, 감귤들이 고유의 향은 없어지고 들척지근한 맛만 난다. 사정이 이러니 달지 않은 것을 찾아 먹기가 어렵다. 원하지 않아도 한평생 달콤한 인생으로 살다 갈 수 있는 세상이다.

 단맛이 본능의 것이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평생 사탕을 물고 살면서 행복해한다면 현재의 단맛 세례는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이 달기만 하면 아무 재미가 없다. 쓰고 시고 맵고 짠 것이 입 안에 들어야 그 단맛도 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단맛이란 묘해 다른 맛들 속에 숨는 버릇이 있다. 떡볶이를 매운맛으로 먹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맛이 매운맛보다 강한 것이 보통이다. 맵고 짠 짬뽕이나 인스턴트 라면도 실제로는 단맛이 상당한 음식이다. 소주를 쓰다 하지만 그 뒷맛은 무척 달고, 막걸리를 구수하고 시원하다 하지만 감미료를 빼면 어색해한다. 단맛을 내는 음식이 아닌 듯이 굴면서 단맛을 더하는 전략은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파는 사람들에게 퍽 유용하다. 저렴한 대충의 재료에 단맛을 적당히 버무려 조리하고는 그럴듯한 맛의 음식인 듯이 내밀어도 다들 속기 때문이다.

 단맛이 음식에 숨어서 하는 역할이 또 있다. 쓰고 시고 맵고 짠맛을 누그러뜨리는 일을 한다. 쓴맛에 단맛 조금, 신맛에 단맛 조금, 매운맛에 단맛 조금, 짠맛에 단맛 조금이면 각각의 맛이 도드라져 맛없다 할 수 있는 음식도 그냥 저냥 먹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화학조미료 없이 좋은 맛을 낼 수 있다는 요리사의 비법이 겨우 설탕일 때도 있다.

 단맛의 음식이 건강에 안 좋은지, 나는 잘 알지 못하며 관심 영역의 일도 아니다. 단지 걱정하는 것은 단맛으로 범벅이 된 음식이 세상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문화는 자연을 이해하고 느끼는 일에서부터 비롯한다. 인간이 먹는 것은 자연이며, 이를 인문의 것으로 조합해내는 것이 곧 음식문화다. 현재의 과도한 단맛 세례는 그 자연을 오롯이 이해하고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음식문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데, 비유하자면 포토샵으로 반질반질 덧칠해 프린트한 후기인상파 그림 같다고 할까 싶다.

 음식문화는 일상의 문화다. 그래서 그 어떤 문화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각자 그 문화 행위의 주체로서 보편적이고 일리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달콤하게 코팅된 관점일 뿐인데 말이다. 쓰고 시고 맵고 짠 인생을 달콤하게 덧칠해 스스로 속이고 싶은 것일까.

황교익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