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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刑<족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9호 27면

공자는 “쉰 살이 돼 하늘의 뜻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고 했다. 지명(知命)은 나이 오십을 가리킨다. 한자 지(知)에는 화살(矢)이 들어 있다. 화살은 고대 중국에서 신성한 물건이었다. 화살에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행해지는 예포(禮砲) 발사도 같은 의미다. 화살을 꺾는 행위는 서약 의식이다. 지는 신에게 맹세하듯 분명히 알게 됐다는 뜻이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씨족을 의미하는 족(族)에도 화살이 있다. 화살(矢)을 제외한 부분은 바람에 흩날리는 깃대다. 조상이 같은 씨족의 기(旗)다. 족은 깃대 아래서 화살을 꺾어 동족의 일원임을 서약하는 모습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007년 대선에서 패한 뒤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라고 했다. 폐족은 조상이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가문이다. 유배 당한 다산(茶山)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표현을 인용했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토론회에서 폐족을 다시 언급해 뉴스를 탔다.

폐족은 족형(族刑)과 연좌제의 산물이었다. 황제에게 족형은 전가보도(傳家寶刀)였다. 진(秦)의 상앙(商<9785>)은 상군서(商君書) 상형(賞刑) 편에서 “형벌을 무겁게 하고 죄를 연대 처벌하면 백성이 감히 시도하지 못한다. 백성이 감히 시도하지 못하니 형벌이 없게 된다(重刑連其罪, 則民不敢試. 民不敢試, 故無刑也)”는 논리를 폈다. 맹자는 반대로 “죄인의 자식을 처벌하지 않는다(罪人不<5B65>)”며 관용을 주장했다. ‘당률(唐律)’은 모반·대역죄에 한해 아비와 16세 이상의 아들만 사형에 처했다. 족형을 관대하게 적용한 왕조였다. 명(明)대는 잔혹했다.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각종 의혹 사건을 일으켜 관리 10만여 명을 살해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의 아들 영락제는 학자 방효유(方孝孺)를 회유했다. 방효유는 ‘연적찬위(燕賊簒位·연 땅의 도적이 황위를 훔쳤다)’라고 썼다. 화난 영락제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구족(九族)과 제자, 친구 873명을 처형한 뒤 능지처참했다. 구족을 싸잡아 주살한 주련구족(誅連九族)이다.

중국이 탈북자 북송을 시작했다. 북한에선 족형이 여전하다. 탈북자 가족까지 수용소행(行)을 면치 못한다. 우리 정치권의 폐족 논쟁이 한가로워 보이는 이유다. 여야가 탈북자 문제에 한목소리를 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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