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서 예비후보 ‘돈선거’ 내부 고발한 조직책 … 이들에게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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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선거판에 심어놓은 ‘부비트랩(booby trap)’이 작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캠프의 조직관리책임자 이모씨가 예비후보 A씨를 고발한 것은 ‘공범이라도 자수를 하면 얼마든지 큰 포상금(최대 5억원)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의 위력을 보여준다. 선관위가 ‘공범 자수자 특례’ 방침이 담긴 선거관리 대책을 발표한 건 지난달 17일이었다. 이씨가 신고한 건 불과 사흘 뒤인 20일. ‘한 배에 탄’ 이를 순식간에 적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씨의 내부자 고발이 불거져 나온 안양시는 수도권 선거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 뉴타운의 정치화

 다세대가구가 많고, 인근 신도시 때문에 박탈감이 심했던 이 지역구엔 2000년대 들어 뉴타운 열풍이 불었다. 2008년 총선에선 모든 후보가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4~8가구가 세 들어 있는 다세대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겐 임대료가 큰 수입원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개발 이익도 바랄 수 없게 됐다.

 예비후보자 A씨는 몇 년 전부터 뉴타운 반대의 선봉에 섰다. 재산권이 걸린 문제여서 추진위는 금방 결성됐고, 결집력도 강했다. 1000명이 넘는 조직이 된 추진위는 뉴타운개발을 무산시켰고, 2010년 지방선거 땐 모든 후보가 찾아와 악수를 청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때부터 A씨는 정계 진출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다른 예비후보들도 뉴타운 반대 조직에서 역할을 하던 A씨를 전혀 공격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 시민참여 경선의 역설

 내부고발자 이씨는 이 지역 토박이로 과거의 정당 지구당 조직에서 청년부장을 했다. 동네 조기 축구회부터 각종 산악회까지 이씨가 모르는 조직은 없었다.

 A씨가 이씨를 찾은 건 지난해 말이다. 성당에 함께 다니는 이씨의 후배를 통해 접근했다. “4월 총선은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게임이 끝나는 거라고. 두 달간 바짝 2억~3억원만 쓰면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고 이씨는 폭로했다.

이씨는 “아직까지도 밑바닥에선 조직선거를 해야 경선에서 이길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많은 시민을 참여시켜 조직·금권 선거를 무력화한다는 시민참여 경선도 많은 돈을 쓰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19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총 800만원을 받았다. A씨는 “돈은 팍팍 써도 좋다”며 이씨를 독려했다고 한다. “보좌관도 할 수 있고, 사업자금도 대줄 수 있다”며 ‘대가’도 제시했다는 게 이씨의 얘기다.

다세대가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뉴타운 반대활동을 한 A씨는 아파트 단지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씨는 아파트 부녀회원 13명을 조직해줬다. 향우회와 지역 정치모임도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돈을 나눠주고 정당의 입당원서를 받는 일은 여전했다. 입당원서는 현금과 바로 교환됐다고 한다. 어떤 노인은 선거 사무실에 입당원서를 한 움큼 가져오기도 했다고 이씨는 밝혔다.

 # 은밀한 여론조작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지역의 군소 신문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이를 기사화하는 것이라고 이씨는 주장했다. 헤드라인을 ‘현역 의원과 ○○의 접전’으로 뽑고, 사진까지 박은 뒤 그걸 가지고 지역에서 홍보를 한다는 얘기다. 보통 1면의 경우 250만~300만원씩 ‘정가제’로 거래가 이뤄지곤 한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A씨가 ‘어떤 지역신문 기자가 250만원에 날 걸 50만원 깎아서 200만원에 나게 해주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했다.

 A씨가 기소되면 이씨는 포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액수는 포상금심의위원회가 사안의 경중을 따져 결정하는데 억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자수자 특례나 포상금에 대해선 몰랐다. ‘배신자’ 소리를 듣고 협박을 당하면서도 신고한 것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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