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놈구조 발표 100일] 해외 실용화 연구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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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유전체(지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 1백일이 지났다. 미국 정부의 발표 이후 세계 각국은 유전자지도를 이용한 '꿈의 신약' 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막대한 부를 창출할 기능유전체 발굴, 그리고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 특성과 기능 연구, 개인간의 염기 차이를 밝히는 비교유전체 연구 등에 막대한 투자와 인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지놈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선진국의 지놈연구 동향과 국내 대응을 살펴본다.

'구조에서 기능으로' .

유전자 기능을 밝혀내는 기능유전자학이 포스트지놈 시대의 핵심 주제다. 30억쌍에 달하는 인간의 염기서열이 규명됐고 이들이 무료로 전세계의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지만 정작 질병치료에 응용되려면 특정 유전자의 인체내 기능을 알아야 하기 때문. 기능규명은 곧 돈이다.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은 적게는 1천만달러에서 많게는 1억달러의 상업적 가치를 지닌다. 당뇨병 치료에 중요한 인슐린 유전자는 10억달러에 달한다.

울산대 의대 생화학교실 송규영 교수는 "유전자 기능에 핵심인 SNP(단일염기다형성-염기 1천개당 1개꼴로 나타나는 개체.인종간 유전적 차이)규명이 전세계적으로 올해 5월 10만개였으나 1백일이 지난 현재 1백40만개에 달할 정도" 라고 밝혔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2010년 전세계 바이오 관련 시장은 1조달러, 국내시장만 2000년 1조2천억원에서 2010년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지놈연구는 정부.민간의 역할분담이 두드러진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인체지놈연구소장이 이끄는 다국적 컨소시엄팀은 염색체 양쪽 끝 부분에 위치해 규명이 까다로운 나머지 3%의 염기서열을 내년 초까지 끝낸다는 방침. 돈이 되진 않지만 민간이 하기 어려운 공적 연구를 정부가 맡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미국 바이오벤처 셀레라는 수익사업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미국 파이저, 일본 다케다 등 굴지의 제약회사에 지놈정보 사용권에 대한 대가로 수천만달러를 확보했다.

동양인 유전자 규명을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에 합작회사를 설립했는가 하면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 의대 내 단백질 해석연구센터를 만드는 등 전세계 시장석권에 나섰다.

지놈산업에서 미국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유전자 특허에 관대한 정책적 배려도 한몫한다. 미 특허청엔 이미 1천여건의 유전자 관련 특허가 등록돼 있다.

상업적 용도가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에까지 특허가 인정되는 국가도 전세계적으로 미국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인간유전자에 대해 특허 인정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셀레라 등 민간기업이 특허를 독점함으로써 후발주자들의 연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격전도 볼 만하다. 일본의 목표는 유전자의 최종산물인 단백질. 유전자는 97% 이상 규명됐으나 단백질은 1%도 밝혀지지 않은 미답의 영역이다.

신진대사를 주관하는 효소 등 인체 내 대부분의 핵심물질이 단백질로 구성돼 있으므로 단백질 구조 규명은 신약개발 등 질병치료에 필수적인 차세대 과제다.

일본 리켄연구소는 최근 요코하마(橫濱)에 지놈과학종합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엔 단백질 구조 해석에 필요한 최첨단 핵자기공명장치 20대가 설치되는 등 세계 최대 규모의 단백질연구소로 자리잡게 된다.

이미 일본 과학기술청은 1백억엔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 미국 등 서구인이 아직 관심을 갖지 못한 동양인 유전자 분석에도 나섰다.

일본의 생명공학회사 다카라주조는 최근 미국 셀레라의 네배나 되는 염기분석능력을 갖춘 드래건 지노믹스를 설립, 몽골인종 등 동양인 유전자 분석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의 직접 경쟁을 피한 틈새시장 공략도 돋보인다. 일본은 쥐 유전자 해독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

리켄연구소만 8만여개의 쥐 유전자를 확보해 이중 2만개를 내년 초 공개할 예정이다. 인체실험이 금지된 이상 대부분의 의학연구가 쥐를 대상으로 이뤄지므로 쥐 유전자 확보가 차세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있는 것.

우리와 연구능력이 비슷한 브라질도 눈여겨볼 사례. 포항공대 분자생명과학부 채치범 교수는 "브라질은 최근 상파울루 주정부의 지원 아래 오렌지 생산량을 3분의1로 감소시켰던 식물 박테리아의 유전자 서열을 완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고 강조했다.

유전자 규명을 통해 박테리아 증식을 차단함으로써 오렌지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전략이다.

인체나 쥐 등 유전자 해독이 어려운 고등생물보다 식물이나 미생물 등 선진국이 미처 돌아보지 않는 분야에 연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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