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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 막히자 가계대출 늘려 … 또 다른 뇌관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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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말 저축은행에 1000만원의 신용대출을 신청했다가 연체 이력 때문에 거절당한 박모(52)씨는 최근 저축은행 대출 중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심사 기준이 완화됐으니 다시 한번 대출 신청을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중개인이 귀띔해준 신용대출 금리는 30%대 초반. 박씨는 “이자가 지나치게 높지만 은행·카드 대출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저축은행 대출을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이 가계 대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한때 집중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이 커지면서 돈 굴릴 데가 마땅치 않아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가계 대출 규모는 9조9323억원. 금융권에선 이미 10조원을 훌쩍 넘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대출고객은 다른 곳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저신용자다. 나이스신용평가 이혁중 연구원은 “러시앤캐시 등 대부업체의 영업정지 처분 가능성 때문에 저축은행 대출 시장이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며 “카드론조차 막힌 저신용자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저신용자에게 돈을 꿔주기 위해 심사 기준을 완화한 대신 금리는 확 올렸다. 업계 1위 솔로몬저축은행의 경우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 중 절반에 가까운 46%가 연 30%가 넘는 이자를 내고 있다. 연 35% 이상의 이자를 내는 사람만 따져도 23%에 이른다. 연 17% 안팎인 카드론 평균 금리의 두 배 수준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예가람·우리금융저축은행의 경우 전체 대출자의 90% 이상이 연 35% 이상의 금리를 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개인은 “저축은행들이 최근 가계 대출을 늘리면서 평균 대출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지역별로 허가를 받아 영업하기 때문에 돈을 빌릴 사람이 여러 곳을 돌아보며 금리를 비교하기도 어렵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를 내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저축은행의 예금-대출 금리 격차(예대차)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과 가계대출의 금리 차는 11.02%포인트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저축은행의 평균 예금 금리는 5%였다. 2004년(5.5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반면 대출금리는 2004년 평균(12%)보다 4%포인트 이상 뛴 16.02%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의 예금-대출 금리 차이(2%포인트)의 다섯 배 정도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예금을 받아봐야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으니 예금 금리를 계속 내리는 것”이라며 “반면 위험성이 높은 저신용자에게 주로 돈을 빌려주다 보니 대출 금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출 행태가 저축은행의 부실 심화와 서민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저축은행 대출 고객 중 30일 이상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의 비율은 11.79%다. 시중은행 대출 연체율(2.17%)의 6배 가까운 수치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가계대출 심사기준이 완화됐다는 것은 부실 위험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금융 당국이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은 현재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리를 공개했다간 저축은행의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어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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