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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들, 교과서를 뛰어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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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들이 교과서 밖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입시 공부와 교과지식 습득에만 얽매이지 않고 특기·적성을 살려 실전능력으로 키우고 있다. 심지어 상품으로까지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

김슬기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특기를 실전 능력으로 키우는 학생들이 있다. UCC 공모전서 수상한 최미지양, 교내 대회 만든 안재원군, IT 기업을 창업한 송태현군(왼쪽부터). [최명헌 기자]

#1 송태현(경기 한국디지털미디어고 1)군의 호주머니 속엔 명함이 있다. ‘NS 프로젝트 매니저’. NS는 주식회사 NewStandards의 약칭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정보통신(IT) 기업이다. 송군이 같은 학교 친구들 11명과 뭉쳐 만든 회사다. 만든 지 7년이 된 교내 창업동아리가 청년 창업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친구들이 이비즈니스학과·디지털콘텐츠학과·해킹방어과 등 학교에서 다양한 전공을 한 덕에 기획·회계·개발·디자인팀으로 회사 업무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송군은 아직 학생이지만 대외적으론 이 회사의 어엿한 리더다. 친구들과 함께 지난해 5월에 온라인 주식거래 온라인시스템 개발에 첫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실패였다. 물건을 사려는 고객까지 생겼지만 제품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어 판매를 접었다.

송군은 “실패를 딛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으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당시 택시 범죄가 성행하던 때라 승객의 안전을 돕는 ‘택시 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말했다. 택시마다 QT코드를 부여해 택시에 탑승 후 앱을 실행시키면 승객의 승·하차 시간, 택시 기사의 이력, 차량 번호 등이 뜨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렇게 만든 ‘세이프티 택시(Safety taxi)’ 앱을 6월 출시를 목표로 한 지방자치단체와 상용화를 논의 중이다. 송군은 “그동안 주변 어른들이 ‘학생들이 뭘 하겠느냐’는 시선으로 쳐다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젠 우리 손으로 만든 앱으로 사업 파트너로 일하게 된 만큼 실력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 공모전에 참여하는 경험도 실무를 쌓는 장이 된다. 3D 애니메이터가 꿈인 최미지(경기 주엽고 2)양은 최근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이 주최한 대한민국청소년디자인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미래’를 주제로 한 UCC 제작 공모전에서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개성 넘치는 화면을 선보여 관심을 받았다. 최양은 “중2 때부터 다져온 능력이지만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어 기뻤다”며 그간의 노력을 회상했다.

최양은 중2 때 방과후 학교에서 배웠던 컴퓨터 수업이 계기가 돼 동영상 편집과 촬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문학원을 찾아다니며 성인들 틈에 끼여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UCC영상에 3D를 적용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최양도 시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UCC 관련 공모전에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최양은 “작품을 낸 횟수에 비해 수상하는 경우가 적었다”고 말했다. “실력을 쌓고 싶어 도전했지만 매번 영상물을 만들고 평가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고독한 인내가 필요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수상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교내에 영상동아리를 만들어 실력 쌓기에 전념했다. 친구들이 보습학원에 갈 시간에 컴퓨터학원으로 향했다.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학업을 병행하며 자투리 시간을 모아 공모전을 준비했다. 이런 최양의 노력은 결국 지난해 교내 ‘포트폴리오 1위상’을 받으면서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작한 UCC를 모아 포트폴리오로 만든 것이 학생 역량개발 노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3 학교 안에서도 실전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지난해 말 대전 만년고에선 ‘경제·시사 골든벨 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학생들에게 경제·시사 지식을 쌓는 동기부여가 됐다. 이 대회를 기획한 학생은 올해 한양대 경영학부에 입학하는 안재원(대전 만년고 3)군이다. 학교에 경제 수업이 없는 점이 안타까워 대회를 여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앞서 안군은 교내에 경제·시사 동아리인 ‘C.E&A’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경영·경제를 전공하고 싶은 친구들과 모여 관련 지식을 공부했다. 한발 더 나아가 동아리의 연구활동과 지식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회를 계획했다. 안군은 친구들과 함께 신문 읽기와 토론·발표로 쌓은 경제 상식을 바탕으로 직접 문제를 출제하고 우승자를 평가·시상하며 대회를 운영했다.

안군은 “학교에 경제 수업이 없어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없을까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80여 명의 학생이 참여를 신청했다. 안군은 예상문제 300제를 출제·배포해 대회 전에 참가자들이 경제·시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를 출제하느라 안군의 경제·시사 실력도 높아졌다. 안군은 “‘소질과 적성을 생각만 하지 말고 발휘할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계속 도전하면 경험이 쌓여 실력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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