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00여 명 멘토 참여 … 공부·일상 이야기 주고 받으며 격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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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요? 솔직히 무서웠었어요. 누나 인상이 좀 강해 보였거든요(웃음).” “야 안 돼~ 좋은 인상이라고 말해 줘야지.” 김지윤(서울 경기여고 1)양과 장민준(가명)군이 티격태격 서로의 입을 막으며 담소를 나눴다. 둘의 모습이 남매처럼 보일 정도다. 이들은 6개월 전 멘토·멘티로 만났다. 장군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 장군에게 한국은 고국이면서도 동시에 먼 나라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장군은 “그동안 활달한 성격 덕에 친구들과 사귀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마음 한 편엔 ‘나는 다르다’는 생각을 늘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장군의 마음속 그림자는 김양과 만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장군과 김양은 함께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친남매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김지윤양, 장민준군과 강산나·홍서원양(왼쪽부터)이 서로 멘토·멘티로 만났던 지난 6개월간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들은 이제 “한 가족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김진원 기자]

홍서원(서울 경기여고 2)양도 6개월 전부터 강산나(서울 덕수중 1)양의 멘토로 활동 중이다. 강양에겐 몽골 이름도 있다. ‘어트겅바르 졸사르나이’. 강양은 “홍서원 언니를 만나면서 내게도 친언니가 생겼다는 사실에 이젠 하루하루가 즐겁고 안정감을 갖게 됐다”고 자랑했다. 홍양은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만나 보니 연예인을 좋아하고 남자친구 고민에 밤잠을 설치는 우리와 똑같은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강양을 보고 웃었다. “요즘엔 친동생에게 줄 선물을 사면서 산나에게 줄 선물도 함께 산다”며 “한 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양과 홍양의 멘토 활동은 일대일 개인 멘토링을 넘어 가족 간 멘토·멘티 활동으로 발전했다. 멘토 가족과 멘티 가족이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서로가 제2의 가족이 됐다.

경기여고 학생들의 이 같은 멘토링은 2008년 임병우 교사가 경기여고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임 교사는 새터민의 정착을 돕는 형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다문화가정과 새터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멘토·멘티를 맺어 주는 교내 다문화동아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3년 동안 해마다 학년당 70여 명의 경기여고 학생이 멘토 활동에 참여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11월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멘토링 사회공헌사업인 휴먼네트워크의 제3회 대한민국 휴먼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 교사는 “다문화가정·새터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이들을 만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벽”이라며 “이들이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멘토로 활동했던 경기여고 졸업생들. 왼쪽부터 장여진·이경주·정솔미·임효정씨.

이 같은 활동은 경기여고 학생들의 진로·적성 계발에도 도움이 됐다.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대 새내기가 되는 이경주(18)양은 3년 동안 또래 새터민 학생들의 멘토로 활동했다. 이양은 “새터민 친구들이 원하는 건 마음을 나눌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멘토링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정치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돌아봤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할 예정인 장여진(18)양의 꿈은 사회적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장양은 “새터민 학생들을 돕기 위해 정책뿐 아니라 기업의 동참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현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휴먼네트워크=보건복지부 주관 멘토링 사회공헌사업. 2009년 시작돼 기업·공공기관·학교 등 협력기관 156곳과 연계해 성장넷·생명넷·자활넷·장애넷·후견넷·글로벌넷 등 6개 분야에서 사회적 취약계층과 청소년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엔 1만여 명의 멘토·멘티가 참여했다. 연말에 멘토링 우수 사례를 공모해 대한민국 휴먼대상 시상식을 진행한다. 휴먼네트워크 멘토링 정보 서비스 홈페이지(www.humannet.or.kr)에서 제공되는 멘토링 서비스를 검색할 수 있고 멘토·멘티 참여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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