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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세계 보험업계의 거인, AIA 명예회장 에드먼드 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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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마다 ‘구루(Guru·대스승)’가 있다면 에드먼드 체(74) AIA그룹 명예회장은 보험업계의 구루다. 그는 AIA를 세계 최대 보험사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뜻 깊은 것은 다소 헷갈렸던 AIA의 정체성을 확실히 되찾아 놓았다는 점이다. AIA는 1919년 미국인 사업가가 중국 상하이에 설립한 회사다. 비즈니스는 아시아에서 했지만 타이틀은 오랫동안 미국계 금융그룹인 AIG의 자회사였다. 그래서 헷갈렸다. “AIA는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범아시아(Pan-Asia) 기업이에요. 한국인들이 유난히 AIA와 AIG를 헷갈리는데, 다 이유가 있어요.” 체 회장은 빙그레 웃었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인터뷰 장소에) 한국 가족 한 분만 있어달라”고 했다. 그는 직원을 ‘가족’(family)이라고 불렀다. 가장 불확실한 시기에 가장 본연의 모습을 찾은 AIA 스토리를 들어봤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평생을 보험업에 바쳤다고 들었다.

 “지난해 AIA에서 50년 근속 기념식을 했다. ‘골든 애니버서리’라고 한다. 같은 업종, 같은 그룹 내 같은 회사에서 50년을 일했다. 요즘 같으면 둔한 거지. 누가 한 회사에서 50년을 일하겠나?(웃음)”

●한국에선 AIG생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87년부터 한국 영업을 했는데 2000년 마케팅 차원에서 AIG생명이란 상호를 썼다. 그때는 생명보험뿐 아니라 손해보험도 같이 홍보를 했었고 AIA와 AIG가 사실상 단일 브랜드였다. 그래서 유독 AIA가 덜 알려져 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에 ‘AIA생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모기업인 AIG그룹은 리먼브러더스와 함께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사실상 파산했다. 그러나 AIA는 건실한 자회사였다. 미국 정부는 AIG와의 협의 아래 AIA그룹을 독립된 생명보험사로 떼어내기로 했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AIA는 2010년 10월, 홍콩증시에 상장(IPO)했고 205억 달러(약 23조원)를 조달했다. 홍콩증시 사상 최대, 세계적으로도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이제 독자적인 보험사로 보면 되나.

 “그렇다.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에서 AIA는 그 자체로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집안 상표’처럼 키워왔기 때문에 자국 대표 은행만큼이나 믿을 만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AIA 로고의 저 산은 뭘 뜻하나.

 “인도와 중국, 네팔에 걸쳐 있는 에베레스트다. 산은 아시아인에겐 특별하다. 힘과 장수를 의미한다. 고객과의 약속을 상징하고 모든 장애물을 초월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체 회장은 홍콩국립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쑨원(孫文)을 존경했지만 정치는 성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수학자가 되려고 했다. 61년 AIA에 입사한 것은 수학 전공자를 모집한다고 해서다. 이후 AIG 자회사인 대만 난샨생명에 발령받아 대만 인구 6분의 1의 계약자를 거느린 대형사로 발전시켰다. 외국계 보험사 최초로 중국에 단독법인을 설립하고, 대리점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AIA와 AIG가 아시아에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홍콩 정부는 최고 명예훈장인 ‘골드 보히니아 스타’를 내렸고, 뉴욕 국제보험협회는 ‘보험 명예의 전당’에 체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중국인으로는 유일하다.

●보험이 재미있나.

 “그동안 직업을 바꿔보라는 제안을 수없이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이 산업 자체가 매력적이다. 보험산업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다. 따박 따박 저축만 하던 시대였다가 다양한 수익 상품들이 등장했고, 최근 몇 년은 저축성 상품 쪽으로 트렌드가 형성됐다. AIA도 아주 다이내믹한 회사다. 역사가 90년이 넘었지만 매년 새로운 도전과 과제가 생겨난다. 87년 한국에서 보험업 허가를 받은 것도 그중 하나였다.”

●보험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쁘고 미래도 불확실하니까.

 “불확실성(Uncertainty)은 종종 잘못 해석되는 단어 중 하나다. 세상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불확실한 것도 없다. 보자, 당신은 분명히 당신의 삶을 산다. 결혼을 하려면, 내 집을 마련하려면, 아플 때 치료하려면, 가족을 부양하려면 얼마나 돈이 들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나. 은퇴 후 삶에 대해 착실히 계획을 짜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결국 더 안정적이고 나은 삶을 산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준비를 포기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더 큰 문제에 휘청거리게 된다. 보험은 미래 계획을 도와주는 수단이다. 젊은이들이 인생을 즐기며 오늘에 충실한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도 AIA 암 보험 가입자가 많다. 오신 김에 말해달라. 정말 쉽게 보장받을 수 있나, 경제 상황이 나빠져도 괜찮은 건가.

 “오케이. 금융상품이든 그냥 물건이든 뭔가 살 때는 ‘맞는(right)’ 상품을 사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바른(right)’ 회사 제품을 말이다. 사실 회사만 제대로 고르면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재정이 건전한 보험사가 지급률도 높기 때문이다. AIA의 경우, 재무 건전성이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한국 보험시장을 어떻게 보나.

 “한국에선 사망 시 보험금을 받는 보험(생명담보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37%밖에 안 된다. 나머지 63%는 자기 생명에 대해 보험을 안 들었단 얘기다. 게다가 현재 한국인들이 받을 수 있는 평균 보험금은 5만 달러(56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오늘날 4인 기준 가족이 평생 살아가는 데 드는 돈은 평균 140만 달러다. 기준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돈이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당신에게 필요한 보험금과, 실제로 납입하고 있는 보험금 사이에 격차가 많이 난다는 건 의미심장한 문제다. 우리는 좋은 TV나 스마트폰, 자동차를 사는 데는 돈을 아낌없이 쓰면서 가장 중요한 걸 잊곤 한다.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는 일 말이다.”

●한국 금융인들은 유난히 퇴직 연령이 낮다. 일흔이 넘도록 현업에 있는 비결은.

 “누구는 골프를 너무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일하는 매 순간을 즐겼다. 50년 넘게 일했는데 지금도 좋다. 세계적으로 강제퇴직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만 해도 65세에서 70세로 바뀌었다. 한국도 이렇게 바뀔 거다. 한 회사에서 퇴직을 했더라도 다른 업종, 다른 직업에서 뭔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건 없건 간에, 요즘 45세에 은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체 회장은 홍콩에서 나고 자랐다. 비록 1년 중 8개월을 국내외 출장으로 길 위에서 지내지만 아시아 전역이 ‘내 집’ 같다며 애정을 나타낸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 대한 전망도 밝다. 앞으로 20년은 족히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서울시도 홍콩처럼 금융허브가 되려고 하는데 어떻게 보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그런 주제의 포럼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 서울은 노력을 많이 해왔고, 분명히 일부 성과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허브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에 대해 잘 아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한국인은 의외로 글로벌 시장은 잘 모르더라. 글로벌 허브가 되고 싶다면 서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해외 금융기관에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한국 기관들을 해외에 내보내서 세계화시켜야 한다. 우선 아시아에서 1등을 하고, 더 넓은 시장을 겨냥하는 것도 좋겠다.”

●중국은 어떤가.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들은 중국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나라다. 밖에선 계속 민주화 얘길 하는데 중국의 방식은 다르다. 중국만큼 큰 나라가 완벽하게 민주화되기란 어렵다. 당분간 한 개의 정당체제(공산당)로, 안정적으로 갈 거다. 경제도 향후 10~20년 동안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하게 성장할 거다. 수출 비중과 관계없이 거대한 내수시장이 다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직원을 가족이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유는.

 “지금까지 AIA를 회사(company)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늘 ‘AIA 가족’이라고 불렀다. 홍콩 AIA에는 정년이 없다. 현직 최고재무책임자(CFO)도 70세가 넘었다. 물론 해외에선 그 나라에 맞게 운영하지만 한국 AIA생명만 해도 정년 60세에, 더 연장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홍콩에 있는 우리 직원들은 보험설계사를 포함해 평균 20~30년씩 일한다. 아들, 손자까지 대를 이어 입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들이 성과도 좋다. 자기 가족이고 가정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다. 한국에도 그런 기업문화가 있지 않나.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려면 직원이 회사와 자기 일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그런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위기 때 모기업 파산에서 얻은 교훈

고객의 피 같은 돈 맡은 걸 명심해라
위험한 분야 투자하면 안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라 해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난제에 부딪힐 때가 있는 법이다. 에드먼드 체 회장에게는 2008년이 그런 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모기업인 AIG그룹이 파산을 선언해버렸으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당시 AIA는 AIG그룹의 100% 자회사였다. 불똥이 튀는 정도가 아니라 AIG와 함께 좌초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인터뷰 내내 여유롭고 인자한 미소를 띠었지만 금융위기란 단어가 나오자 얼굴엔 금세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직함이 뭐였나.

 “평생을 AIA를 위해 일했지만 세계 생명보험 산업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명분으로 1997년에 AIG그룹의 부회장을 맡게 됐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AIG그룹 내 생명보험 사업부의 회장을 지냈다. 모기업에서 칭찬을 해준 셈이다.”

●그 모기업이 2008년 사실상 파산했다. 충격이 컸을 것 같다.

 “나는 정말이지…(AIG가 파산하는) 사태를 막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해 9월 결국 무너졌고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여론은 AIG를 질타했지만 어찌 됐건 지켜보는 내 마음은 참담했다.”

●AIG를 옹호하는 건가.

 “아니다. 부실이 터진 곳은 AIG의 파생상품 사업부였다.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CDS·신용파생상품의 일종이다)를 사들여 머니게임을 한 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사들이 채권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것은 분명하다.”

●AIA도 위험했을 것 같은데.

 “나는 AIA 살리기에 모든 걸 걸었다. 정부 관계자란 관계자는 전부 다 찾아가서 만나 우리 회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뱅크런(Bank run·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처럼 일부 고객은 돈을 빼 달라고 회사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다행히 그동안 브랜드 가치와 명성을 쌓아왔고 금융 당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들도 우리 입장을 이해해줬다.”

●봐준 건가.

 “그럴 리가 있겠나.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지급여력비율(Solvency margin ratio)’이란 게 있다. AIA는 이게 300%였다. 부채 등을 제외한 순자산이 보험 가입자에게 돌려줄 돈보다 세 배가 많다는 뜻이다. 그 어떤 생명보험사보다 재무 건전성이 우수하다는 걸 인정해 준거다. 금융 당국은 TV와 신문을 통해 AIA가 안전하다고 밝혔고 이후 몇 주가 지나자 드디어 상황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도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좋을 때, 잘나갈 때 더 신중해야 한다고,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고 절절히 느꼈다.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마구잡이로 상품을 팔아선 안 된다. 그러다간 돈을 벌기는커녕 회사 자체까지 몽땅 날리게 된다.”

●특별히 보험사에 주는 교훈이 있을까.

 “생명보험사의 기본은 좋은 수탁자가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피 같은 돈을 대신 맡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실무적으로는 회사가 가진 자산과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돈(보험부담금)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부담금을 충당하고 남을 만큼 수익을 낼 수 있으면 걱정이 없는 거다. 전문용어로는 ‘ALM(Asset Liability Matching·금융기관이 자산과 부채를 합리적을 관리하는 것)’을 잘해야 하는 거다. 수년 전 일본 보험사들이 주식에 너무 많이 투자했다가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수익에 너무 욕심을 내 위험한 분야에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건 개인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j 칵테일 >> 카드게임 ‘브리지’ 고수 … 아내는 한류팬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에드먼드 체 회장의 공통점은? 바로 일도 잘하고, 게임도 잘한다는 것. 이들이 특히 즐기는 건 카드게임의 일종인 브리지(Bridge)다.

 한국에서는 포커와 고스톱이 대중적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체스 다음으로 브리지의 인기가 높다. 체 회장은 이미 고등학생 때 마스터급 실력을 뽐내며 홍콩대회, 대만대회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

●보험과 게임 사이에 공통점이 있나.

 “브리지는 심리 싸움, 정신력 싸움이다. 논리적이어야 하고, 게임의 룰에 그 논리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사업할 때는 어떤가. 늘 경계하고 한순간도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게임판과 똑같은 거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브리지에서 이기기 위해 혹독한 정신훈련을 했다. 집중력, 그리고 몇 수 뒤를 읽는 능력이 핵심이다. 같은 업종의 경쟁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면 그들을 이길 수 있다. 가끔 빗나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넋 놓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다. 비즈니스야말로 기업 간 배틀(battle)이니까.”

●다른 취미도 있나.

 “정신훈련을 브리지로 한다면 신체단련은 테니스로 한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두 시간씩 테니스를 친다. 골프는 별로 운동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안 한다.”

●테니스는 부인과 함께하는지.

 “하하. 아내는 한류팬이다.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는데 요즘은 ‘자이언트’ DVD를 쌓아놓고 본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드라마인데 요즘 홍콩에서 인기 최고다. 안방에 TV가 한 대라서 나도 따라 볼 수밖에 없다(웃음).” 

WhatMatters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중국인에게 넘버원은 언제나 가족이다. 너무 일에만 시간을 쏟지 말고 집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싶다. 그 다음은 내 직원들이다. 나는 회사를 가족을 이루듯이 만들었고, 그래서 직원은 내게 가족이다. 당신이 잘 보살펴야 직원들도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자동적으로 가족(회사) 전체가 잘되는 거다. 내게 중요한 건 가족, 직원, 그 다음이 회사다. 처음 두 가지에 소홀하면 결코 회사가 잘될 수 없다.”

AIA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1919 코넬리우스 반더스타가 상하이에 설립
1947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
1987 AIA코리아 설립
1995 자선단체인 AIA재단 설립
2000 AIA코리아, 'AIG생명보험'으로 마케팅 상호도입
2003 최고의 보험사로 선정(타임·포춘지)
2005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국적 기업으로 선정
2006 AIA호주, 가장 빨리 성장하는 생명보험사로 선정
2008 AIA싱가포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생명보험사로 선정, 글로벌 금융위기로 AIG그룹으로부터 독립
2009 한국에서 사명을 'AIA생명'으로 변경
2010 홍콩증시에 사상 최대 규모로 상장(205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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