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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eekly] 21세기엔 'e-정치인'만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정치권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얼마 전 끝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전자투표가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e-politics가 일상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야흐로 사이버 공간을 무대로 한 새로운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전자정치 구현 인프라 충분

전자정치(e-politics)
.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다. e-politics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외면할 수 없는 대세이며 필수 요소가 되어 버렸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정당도 경쟁적으로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은 얼마 전 끝난 전당대회에서 전자투표를 실시, 새로운 투표 수단의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장외집회 장면을 실시간으로 당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하기도 했다.

또 인터넷을 통한 화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어 그야말로 21세기 정치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무대로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낳은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변화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동안 정치 불신을 보여왔던 젊은 20, 30대가 정치의 주체 세력으로 등장하고 이를 통해 정치 개혁과 자연스런 정치권의 세대교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되풀이되는 구태의연한 작태로 국민 대다수로부터 신뢰감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인 한국 정치에게 e-politics는 유일한 희망의 돌파구다.

한국 정치에서 e-politics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는 충분하다. 한국은 1천6백만명에 육박하는 인터넷 인구를 자랑하는 세계 7위의 인터넷 이용국가다. 특히 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지난 8월 말 현재 2백20만명에 달했고 그 대부분이 가정 가입자다.

가구당 2명이 고속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보면 4백만명 이상의 고속 인터넷 사용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에는 전체 1천3백만 가구 중 3백만 가구 이상이 고속 인터넷에 접속, 접속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인터넷 없는 세상은 이제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지만 유독 정치부문에서만은 디지털 패러다임에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6대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권도 사회의 디지털화를 쫓기 위한 자기생존 전략으로 전자민주주의 구호를 목청껏 외쳐댔다. 마치 유행처럼 많은 후보자들이 인터넷을 자신의 주요한 선거운동 도구로 사용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인터넷 본연의 특성인 인터랙티브한 면을 살리지 못했다. 후보자 개인의 홍보수단 정도로 한정돼 버리거나 유권자에게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다.

실제로 어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 당시에 공약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사이트가 31.2%나 되었고, 지역에 대한 정보 없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가 52.4%에 달해 후보자들이 형식적으로 급조된 사이트를 열어놓고 부실하게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의 확보만으로는 진정한 e-politics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준다. 보다 중요한 것은 e-politics 마인드다.

다행히도 지난 16대 총선에서 나타난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운동은 성공적인 캠페인 사례로 e-politics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전국에 분산되어 있던 4백73개 시민단체가 인터넷을 통해 총선연대 홈페이지에 결집함으로써 효과적인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었고 조직적인 연계활동도 가능했다.

3개월에 걸친 낙천, 낙선운동기간 동안 91만여명이 사이트를 방문하고 1만5천여 건의 글이 게시되는 등 국민적 호응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곳도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총선연대가 낙선운동 대상으로 지목한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키는 성과로 나타났다.

▷ 정치권의 전자정치 구현 미흡

하지만 아직 전반적으로 우리 나라 정치권의 e-politics 구현 정도는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얼마 전 ‘함께 하는 시민행동(http://www.ww.or.kr)’이란 시민단체가 평가한 16대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 활용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2백73명의 국회의원 중 자신의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의원은 1백61명으로 59%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상당수 의원들의 홈페이지는 4·13 총선 때 잠시 운영됐다가 당선 후에는 전혀 관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권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유게시판을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27명에 달했고, 게시판 질문에 답변을 한번이라도 해준 의원은 54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위의 평가를 받은 몇몇 의원들은 자신의 최근 의정활동과 정책 자료 등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하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사실상 사이버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기도 했다.

최근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한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의원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의정활동과 지구당 활동을 보고하고 있으며 유권자들의 책임 있는 글들을 얻기 위해 이메일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보좌진들이 담당 파트를 나누어 일일이 김의원에게 보고하고 답변도 해준다고 한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회 안내 및 가입 방법을 알려주고 별도로 ARS 자동 후원금도 모금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책임 있는 의정활동을 위해 의원회관 내부를 24시간 동영상으로 올려 놓을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의 경우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의정활동과 지구당 활동을 보고하고 있으며 자유게시판 글에 대해서는 의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밖에 김형오, 김희선, 김홍신, 김영일, 신기남, 이창복, 임인배, 임종석, 원희룡, 천정배, 허운나 의원 등도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비전을 갖고 홈페이지를 철저히 관리하는 등 의원 본인의 정보화 마인드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 인터넷

미국의 e-politics가 낳은 최고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지난 9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프로 레슬러 출신의 제시 벤추라를 들 수 있다. 정당이나 공식적인 선거 조직 없이 오로지 프로 레슬러로서의 명성과 인터넷 하나만 가지고 선거에 나선 벤추라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주지사로 당선될 수 있었다.

얼마 전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한 선거운동에서 9개월간의 유세기간 동안 무려 6백40만달러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1백42만명이라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한 바 있다.

존 맥케인은 이 여세를 몰아 조지 부시에 비해 절대적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뉴햄프셔, 애리조나 등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는 저력을 발휘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나라에서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를 주도한 것은 단연 TV였다. 최초로 TV 토론회가 개최돼 후보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생생하게 안방에서 볼 수 있었다. 강성 이미지와 고령의 나이가 약점이었던 DJ는 TV 토론을 통해 여유 있는 유머와 해박한 논리를 과시하며 유권자들의 선입견을 불식시켜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인제 후보 역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면서 예기치 못한 돌풍을 일으켜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 했다.

하지만 TV 정치는 1960년대에 미국의 케네디와 존슨간의 대결에서 이미 선보여졌던 낡은 방식일 뿐이다. TV는 어디까지나 일방향 매체이며 그러기에 정치인들의 TV 토론도 선거 철에나 만들어지는 방송사의 이벤트에 그칠 뿐이다.

TV를 통해서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생생하게 호흡을 나누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일상적인 정치 담론의 형성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1세기 정치는 30여 년 전에 등장했던 TV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매체가 이끌어 간다. 오는 2002년 16대 대선이야말로 본격적인 한국의 e-politics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유권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네티즌을 외면하는 정치인에게 미래는 약속되지 않는다.

“험난한 정치판에서 살아남고 싶은가? 그러면 인터넷으로 가라!”

김능구 e윈컴 대표이사 <wincom@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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