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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구 한·일전 전문가 관전평

중앙일보

입력

모두 잘 싸웠지만 구대성을 위해 마련된 무대였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에다 메달이냐 노메달이냐가 걸린 중요한 승부였지만 구대성은 마치 큰 승부를 즐기듯 완벽하게 던졌다. 이상적인 투수의 표본이었다. 제구력과 볼 배합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

구대성과 마쓰자카 모두 사흘밖에 쉬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랐기에 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투수 모두 다음 투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이를 처음부터 알고 던지는 듯했다. 완투를 머리속에 그리고 등판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구대성은 1회부터 전력 투구하지 않고 70~80%의 힘으로 던졌다.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았기에 제구력이 절묘하게 무릎 주변으로 몰리면서 일본 타자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승엽이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타를 때린 장면은 마쓰자카의 실투였다. 풀 카운트여서 포크볼이나 높게 떠오르는 직구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는데 의외로 정직한 직구로 승부를 걸었다. 이승엽이 좋아하는 코스였다.

전체적으로 우리 타자들이 타석에서 기민하게 움직인 반면 일본은 별다른 동작없이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서 우리가 더욱 승부욕을 발휘했다.

올림픽 동메달 획득은 한국 야구의 쾌거다. 그러나 다음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 특히 투수들은 스피드로는 승부가 어렵고 변화구와 제구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구대성과 정대현이 호투한 반면 정민태와 임창용이 부진했던 것은 힘으로만 승부하는 투수들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쿠바와 미국은 그들이 공격의 팀이 아니라 수비의 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겉으로는 파워와 화려한 공격을 앞세운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의 강점은 투수력과 수비였다.

2004년 아테네에서 정상에 도전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가르쳐준 올림픽이었다.

김성근 <삼성 2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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