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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재단 주인 없어 이사장 맘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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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년간 대학에 들어온 685억원의 기부금을 재단 측이 마련한 지원금으로 위장해 온 사실이 알려진 9일, 숙명여대 학생들이 교정을 걷고 있다. [김형수 기자]
이경숙

숙명여대 재단인 숙명학원(이사장 이용태)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동문·독지가 등이 대학에 낸 기부금을 재단이 마련한 자금으로 위장해왔다. 106년 전통의 명문 사학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숙명학원은 1906년 황실학교로 설립돼 해방 이후 줄곧 공익법인 형태로 운영돼 왔다. 특별한 자산이나 수익구조를 가진 운영주체가 없는 것이다. 종교단체·기업 혹은 설립자 가족이 운영을 맡으며 자산이나 수익구조를 가진 여타 사립대와의 차이점이다.

 이렇다 보니 숙명여대 재단은 이사장이 사실상 학교운영권을 쥐게 되고 이사장에 대한 견제장치도 미흡했다. 특정인이 학교를 사유화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98년부터 14년째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이용태(79) 전 삼보컴퓨터 회장은 이경숙 전 총장(1994~2008년)이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낸 이 전 총장은 이 대학 최장수 총장으로 이 이사장과는 돈독한 관계다. 재단 이사회(8명)는 대부분 이 이사장의 지인이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황규빈(76) 이사는 80~90년대 국내 PC 열풍을 주도했던 이 이사장과 IT업계 40년 지기다. 이돈희(59)·조미행(57) 이사는 이사장이 임명권을 갖고 있는 숙명여고·여중 교장을 각각 맡고 있다. 더욱이 조 이사는 외부인이 맡게 돼 있는 ‘개방형 이사’로 임명돼 학교 안팎에서 자격 논란이 제기돼 왔다. 김광석(73)·정상학(75) 이사는 이 전 총장과 같은 소망교회 장로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학교를 이끌어야 할 이사회가 개인 친분으로 얽혀 있어 15년간의 악습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사회와 대학과의 밀월관계는 이 전 총장 후임으로 한영실 총장이 취임(2008년 9월)하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한 총장이 재단 측에 기부금 세탁 중단을 거듭 요구해 다음해 악습이 중단됐지만 재단과 학교본부 측의 갈등이 시작됐다.

 대학 측이 이사회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자 이 이사장은 지난해 6월 총장 이하 교직원들의 ‘복종 의무’와 ‘집단행동 금지 의무’ 등이 담긴 운영규칙을 제정했다. 당시 7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선 한 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복종 의무’ 규정이 통과되자 교수들은 전체회의를 열고 규칙 철회와 이사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 이사장이 이를 거부해 갈등은 깊어졌다.

 재단의 기부금 세탁이 알려진 9일 이 대학 홈페이지에는 재단을 성토하는 학생들의 글이 쇄도했다. 한 학생은 “등록금을 마련하려 애쓰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학교와 총학생회가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윤석만 기자

기부금 세탁 15년 … 왜 못 막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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