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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쓰레기 대란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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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1992년 5월 인천과 경기도 수원·안양·과천 등지에 주택가 골목길마다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들은 심한 악취를 풍겼다. 당시 2월 10일부터 가동된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인근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주민들이 쓰레기 운반차량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산업쓰레기 반입 시비였다가 곧 생활쓰레기까지 막으면서 쓰레기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소동은 환경처가 산업폐기물의 반입 품목을 줄이기로 약속하면서 한 달 만에 끝났다. 이후 20년이 별 탈없이 지나갔다. 2000만㎡가 넘는 세계 최대의 위생매립지가 수도권에서 배출된 쓰레기들을 소화해 준 덕분이다.

 하지만 수도권매립지는 쓰레기 처리를 시작한 후 20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당초 약속대로 2016년까지만 사용하고 문을 닫으라는 인천시민들의 요구 때문이다.

 환경부 산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조춘구 사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났다. 조 사장은 “종량제와 소각으로 쓰레기 양이 줄어 2044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매립지를 사용할 수 있는데도 문을 닫으라는 주장은 지나치다”며 “문을 닫으면 서울·인천·경기도의 2400만 주민들이 내놓는 하루 1만1875t의 쓰레기는 어디에 묻어야 하느냐”고 난감해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이유는 있다. 매립을 시작할 당시 수도권매립지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다 남쪽 청라지구에 2010년 하반기부터 주민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악취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 수도권 지역의 수해 때 물에 젖은 수해 쓰레기를 반입하면서 악취가 심해졌다.

 관리공사에서 부랴부랴 163억원을 투자해 악취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매립지 정문 주변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제3매립장 기반공사도 차질이 빚어졌다. 계획대로 하면 지난해 하반기에 착공해야 했지만 인천시와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 시작도 못했다. 제3매립장이 무산되거나, 현 매립지 폐쇄 시점을 조정하지 않으면 2015년부터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수도권매립지는 과거 5공 정권이 동아건설산업의 간척지를 빼앗다시피 해 만든 곳이다. 요즘엔 그런 땅을 수도권에서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몇 년 내 기반시설을 갖추기가 어렵다. 지금의 매립지를 계속 사용하려면 확실한 오염방지와 적절한 보상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여유를 부릴 만큼 시간이 많지도 않다. 서울·인천·경기도가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 안이하게 대처했다간 전 국민의 절반인 2400만 명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서 또 한 차례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