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처리, 장기화 조짐

중앙일보

입력

대우차 매각작업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차의 조기매각을 위해 선매각.후정산 방식에 이어 분할매각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으나 입찰 참여업체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상태다.

GM의 경우 선매각.후정산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고 현대차는 파트너인 다임러 크라이슬러를 설득중이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좌초 위기의 정부방침=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 18일 매각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선매각.후정산 방식에 대해서는 예상했던대로 냉담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GM-피아트 컨소시엄은 정밀실사도 없이 (구속력 있는)바인딩 오퍼를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 사실상 채권단의 방안을 거부했다.

이는 인수에 적극적이던 포드가 왜 중도포기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GM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도 조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딜을 지난번 1차 제안서 제출의 연장선상에서 보기 보다는 다시 판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컨소시엄의 이런 반응은 대우차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정부와 채권단의 매각방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데 집중돼 있는 듯 하다.

이들의 이같은 반응은 이제는 자신들에게 칼자루가 쥐어진 만큼 채권단 뜻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함께 `시간 끌기' 전략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GM은 특히 억지로 현대차와 다임러를 끌어들여 경쟁입찰 방식으로 몰고 가려는 채권단의 태도에도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성급한 발표가 입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정말 살길이 어떤 방법인지를 입찰참여 대상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화 조짐= 채권단은 "열흘 안에 제안서를 받아 한달 안에 새 주인을 정하겠다"며 오는 28일을 전후해 제안서를 받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 입찰참여를 묻는 공문조차 보내지 못한 채 실무진인 대우 구조조정협의회를 통해 GM과 현대차, 다임러에 의사타진만 하고 있다.

물론 참여업체가 1곳으로 압축될 경우 바로 협의에 들어갈 수 있어 굳이 공문을 보낼 필요는 없다.

문제는 GM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다임러의 부정적인 견해, 현대차의 조심스러운 행보를 감안해 볼 경우 참여결정을 내리는데도 상당기간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대우차 관계자는 이와관련, "이번달 안에는 통보를 해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채권단도 이들의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양측이 수긍할 수 있는 매각방법을 확정해 통보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 의사타진과 동시에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최소 6주가량 걸릴 사전 정밀실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양측의 입장을 감안해 볼 경우 극적 타결이 없는 한 `한달내 매각'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분할매각 방안 부상=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 21일 "일괄 매각이 원칙이지만 일부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분할매각법의 효과적 사용을 언급했다.

일괄매각을 종용할 경우 매각협상 자체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지만, 이는 포드와의 협상 때도 검토된 것인 만큼 전혀 새로운 방안은 아니다.

기본 시각은 입찰 참여자의 필요를 존중하는 것이다. 분할매각 형식의 포인트는 처음부터 매각대상인 국내 5개법인과 해외 36개(생산11개,판매 25개)법인을 늘어놓고 분할매각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일괄매각을 추진하되 인수를 거부한 업체들은 분리시켜 추후 재입찰을 할 것인지에 있다.

전자는 완전한 분할 매각인 반면 후자의 경우 채권단 입장에서는 일괄매각의 틀에 분할매각법을 가미한 것이고 입찰 참여자가 보면 `선별 인수'로 해석할 수 있다.

당초 대우 구조협은 대우차와 쌍용차, 대우통신 보령공장 등은 분리매각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해외법인이 대부분 대우차의 자회사 형식으로 돼 있는 등의 이유로 분할 매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일괄매각을 추진했었다.

엄 총재 발언에는 일괄매각 방침은 그대로 유지한되 인수자가 원할 경우 일부를 제외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돼 이 경우 인수대상에서 제외된 업체는 재입찰을 실시한 뒤 다시 남는 기업은 최악의 경우 청산 절차를 밟는다는 수순이 될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당장 선호하는 업체들은 조기 매각해 인수대상의 덩치를 줄여 나가고 선별 조기 정상화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제외되는 업체들 탓에 전체적인 대우차 처리가 늦어질 수 있는 맹점을 갖고 있다.

완전 분할매각이 추진될 경우에도 틀을 새로 짜야 하고 입찰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장기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의 과감한 결단이 중요하다"면서 "선매각.후정산 방법이나 분할 매각방안, 위탁경영 등 여러가지 방안만 제시되고 확정된 방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입찰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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