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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용의 등에 올라 양파 껍질 벗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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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술을 마주하고 노래 부르니, 우리 인생 얼마나 긴가요(對酒當歌人生幾何).”

 중원을 호령했던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 첫 구절입니다. 인생 대신 중국을 화두 삼아 보낸 5년2개월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 벗들이 건넨 마음의 송별사를 새겨봅니다.

 “중국이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생각들을 그동안 제기해줘 감사합니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정겨운 표정으로 작별의 덕담을 건넵니다.

 “친중파(親中派)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중파(知中派)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 법제일보 쉬즈젠(徐志堅) 주임의 인사말이 알쏭달쏭하네요. 한국 사람 중에 누가 감히 중국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중국의 실체와 의중, 그들이 지금 걸어가는 길, 13억이 지향하는 꿈을 제대로 읽어내고 있나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중국은 용(龍)을 닮은 듯합니다.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바닥, 뱀의 목덜미, 사슴의 뿔, 낙타의 머리, 돼지의 코, 토끼의 눈, 암소의 귀, 잉어의 비늘.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 이것들을 한데 융합하면 상상 속 동물이 탄생합니다. 변화무쌍하고 실체를 알기 쉽지 않습니다. 선한 토끼 눈을 하다가도 매의 발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중국을 탐구하는 과정은 양파 껍질 벗기기와 흡사합니다. 벗겨도 벗겨도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민간 기예(技藝) 변검(變<81C9>)처럼 얼굴을 수시로 바꿉니다. 용의 등에 올라 양파 껍질을 벗기는 형국이니 현기증이 날 수밖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중국을 더 잘 알아야 하고, 중국과 친구로 살아가야 합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전 주중대사)의 말처럼 중국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겠지만, 중국을 과소평가하면 큰코다칩니다.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반만 년 역사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북한을 품어 진정한 통일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지지뿐 아니라 이웃 중국의 협조는 절실합니다.

 용처럼 욱일승천하는 중국과 적이 아닌 좋은 친구로 공생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베이징에 도달 가능한 사거리 1500㎞ 이상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면 억제력을 갖춰 중국이 무시 못할 겁니다.” 힘으로 맞서자는 중견 외교관의 아이디어 속에 답이 있을까요.

 옛 문인이 남긴 송무백열(松茂柏悅)에서 힌트를 구해봅니다. ‘소나무가 잘 자라니 옆에 있는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죠. 이규형 주중대사가 강조하는 ‘한·중 상호존중 호혜공영’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오래 사귀었지만 처음 본 것처럼, 처음 만났지만 오래 사귄 것처럼(白頭如新 傾盖如故).”

 사기(史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중국국제방송(CRI) 진둥광(金東光) 국제부 주임의 송별사를 곱씹어보며 나그네의 행장을 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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