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뉴타운의 질서 있는 퇴각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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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1300여 개의 뉴타운·재개발·재건축구역 중 610여 곳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토지 소유자의 30% 이상이 해제를 요청하거나 사업시행 인가 이전의 구역부터 집중 검토하겠다는 기준도 적절해 보인다. 뉴타운 전면 재검토는 서울 강북의 부동산 시장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 구역 해제를 둘러싸고 주민 간에 또 다른 반목을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뉴타운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질서 있는 출구전략으로 연착륙(軟着陸)을 유도해야 할 시점이다.

 뉴타운은 2002년 민간 주도의 마구잡이 재개발을 수술하기 위해 도입됐다. 지방정부가 개입해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교육환경도 개선했다. 시범지구였던 은평·길음·왕십리 뉴타운은 강남북 균형개발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정치가 뉴타운 사업을 오염시키면서 사달이 났다.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공약을 남발했고,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빈사 상태에 빠졌다. 개발이익이 사라지고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지자 뉴타운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박 시장이 내놓은 출구전략의 큰 그림에는 동의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우선 정치적 의도로 전임 시장의 정책을 무리하게 뒤집겠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박 시장은 지난해 말 강남 재건축안을 보류시켰다가 아파트값이 폭락하자 “재건축 정책이 달라진 게 없다”고 번복했던 적이 있다. 뉴타운은 훨씬 예민한 사안이다. 재검토 발표로 이미 건설업체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이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유자가 아닌 거주자 위주로 중심축을 옮기겠다”는 박 시장의 언급은 재개발의 근본을 흔드는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 앞으로 출구전략의 속도와 강도를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조절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누가 매몰(埋沒)비용을 부담할지는 뜨거운 감자다. 서울시는 뉴타운 탈출비용을 중앙정부에 떠넘기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업 주체가 책임지는 게 맞다. 제주도·강원도 주민이 낸 세금으로 서울의 정책실패 비용을 댄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매몰비용 지원 없이는 구역 해제가 사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공을 떠넘기기보다 온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지원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앞으로 박 시장은 뉴타운의 대안을 제시해야 할 숙제가 남았다. 현재 뉴타운과 재개발 사업은 서울지역 신규 주택공급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전면 재검토 조치로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고, 전·월셋값이 오를 수 있다. 미리 부작용을 차단하려면 향후 주택 공급의 새로운 방향과 원칙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가 뉴타운 난제를 푸는 데 한나라당과 정부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특히 뉴타운 공약을 남발한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원죄의식(原罪意識)을 갖고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누가 “서울시장에게 뉴타운 약속을 이미 받았다”거나 “법을 고쳐서라도 뉴타운 지정 권한을 빼앗아 오겠다”고 압박했는지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