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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 하락의 그늘 … 곳곳서 불법도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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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소가죽과 내장이 숲 속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 소를 끌고 왔던 밧줄과 소를 해체할 때 사용했던 피묻은 장갑도 버려져 있다. 소에 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귀표(耳標)도 보인다. 30일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집현산 중턱에서 만난 불법도축 현장이다. 남긴 소 가죽이 2개인 점으로 미뤄 2마리가 도살된 것으로 보였다.

소값이 하락하면서 불법도축이 늘고 있다. 현장 주변에서 만난 염모(50)씨는 “설을 앞두고 400㎏ 짜리 소 한 마리를 2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뒤 한적한 외양간에서 도축해 친구 4명이 나눴다. 4명이 50만원씩 냈고 주변 친척들한테 조금씩 팔았더니 고기값이 빠지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소 잡아준 사람한테는 수고비조로 고기를 줬다고 덧붙였다.

 주로 불법도축 거래 대상이 되는 소는 육질 등급이 나쁜 소들이다. 가축시장에 내봐야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축산농가는 600㎏짜리 소를 300만원에 불법도축업자들에게 넘긴다고 한다. 정상가격(513만원)의 58% 수준밖에 안되지만 비싼 사료를 계속 먹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용규(61) 한우협회 진주지회장은 “등급 나쁜 소는 잘 팔리지 않아 불법도축의 유혹에 빠지는 축산농가들이 있다”며 “소값 하락이 가져온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축산법상 소고기 등급은 1∼3등급으로 분류하며 1등급만 다시 3종류의 세부 등급(1등급++, 1등급 +, 1등급)으로 나뉜다. 가축시장에서 1등급은 잘 팔리지만 2∼3등급은 제값을 받기 힘든 실정. 특히 요즘처럼 소값이 내려갈 땐 2∼3등급 소는 애물단지다. 축산농가들은 팔리지도 않는 소를 계속 기르는 것보다 불법도축해 버리는 것이 손해를 덜 보는 것이다.

 한 마리당 도축비용은 등급 구분 없이 100만 원쯤 된다. 문제는 도축비가 같지만 2∼3등급은 잘 팔리지 않는다. 지난해 등급별 평균 경락가격(1㎏당)은 1등급의 경우 1만1256원이었지만 3등급은 6253원이었다. 3등급은 1등급 절반 값인 셈이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은 냉장 시설을 갖춘 육가공업자만 도축을 의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축산물이 위생적으로 유통되지 않을 경우 국민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불법 도축으로 적발되면 형사고발된다.

 정부는 복잡한 축산물 유통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유통구조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생산자→소장수→도축장→중도매인→도매상→유통업체→소비자에 이르는 7단계인 유통구조를 3∼4단계로 줄이는 것이다. 생산자한테서 구입한 소를 도축한 뒤 바로 소비자에게 파는 도축과 유통을 동시에 한곳에서 하는 축산물 종합물류센터를 지역별로 세우기로 했다. 정부는 이렇게 할 경우 소비자 가격을 6.4%쯤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관 경남도 축산물 위생담당은 “축산물 유통단계를 축소해 유통업자들이 가져갔던 이익을 생산자에게 돌려준다면 불법도축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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