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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말아먹는 부자2세 위한 '新도우미'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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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차세대 CEO 경영승계 실전과정’이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중소기업중앙회 주최로 열렸다. 가업승계 전문 컨설턴트인 김기백 CNO파트너즈 대표가 중소기업 2세 경영자들에게 ‘후계 사장의 자세’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후계자는 단순히 사업을 물려받는 게 아니라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용철 기자

부동산 등 100억원대 재산가이자 유통업을 하는 이모(73) 회장은 40대 장년에 접어든 장남이 아직도 미덥잖다. 수십 년 힘들게 일군 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증권사에서 3년 정도 일한 뒤 자신의 업체에서 일을 가르쳤다. 몇 년 지나 독립하고 싶다고 해 자그마한 유통업체를 차리는 걸 도와줬지만 얼마 안 돼 접었다. 중고차 매매업에도 손대 봤지만 역시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만 한 자식 없다’고 했던가. 적어도 사업수완이나 돌파력에 관한 한 2세가 선대 못지않은 능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평생 일군 사업이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키울 수 있을지, 아니면 현상유지나 제대로 할지’ 고민이 커진다. 1970~80년대 사업을 일으켜 수성한 실업가들이 60, 70대 은퇴 연령에 이르러 가업승계와 부의 상속·증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국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체계적인 가업승계 교육이란 것이 거의 없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10년 ‘가업승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인 절반 이상(57%)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줄 생각’이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26.6%)는 응답 중에서도 상당수가 물려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승계 준비는 대부분(68.5%) ‘불충분하다’ ‘없다’는 상황이었다.

가업승계를 연구하는 최명기 컨설턴트의 설명. “사업체를 일군 사람들은 그 과정이 너무 고단해 자식에겐 이런 일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생각이 바뀌지요. 그런데 2세의 능력이나 품성이 가업을 물려주기엔 미흡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어려서부터 제대로 준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욱이 자식들은 힘든 중소기업 경영보다 물려받을 재산에 관심을 더 쏟곤 하지요.”

자식이 경영에 참여한 뒤 이런저런 이유로 부자간 갈등도 자주 빚어진다. 연매출 450억원 규모의 꽤 큰 기계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71) 회장은 중역으로 일하는 아들(38)과 경영 의사결정을 놓고 얼굴을 붉힐 때가 많다. 아들이 거래업체와 가격협상을 해 온 결과를 비롯해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아 결정을 뒤집는 일이 흔하다. “해외유학까지 보냈는데 이 모양이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진작부터 기름밥 먹이면서 호되게 경영훈련을 시켰어야 했는데”라고 후회를 토로하기도 한다. 한때 연매출이 수백억원이었던 국내 굴지의 도자기 제품 회사 A사도 1990년대 초반 창업자가 과로로 급거하면서 회사가 기울었다. 혼란스러운 회사를 추스르고 제2의 도약을 꾀할 준비된 2세 경영자가 절실한 경우다.

중소기업중앙회 이창호 가업승계지원센터장은 “창업 때부터 기껏해야 2, 3세대 정도인 우리 기업들은 일본·독일 등 선진국처럼 가업승계나 부의 상속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명기 컨설턴트는 “가업승계나 부의 이전 과정에서 우리는 상속·증여세 문제를 가장 많이 꺼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애착과 비전을 공유하는 기업가 정신 승계”라고 강조했다.

상공인과 자산가의 이런 고민을 근래 금융회사들이 파고들고 있다. 은행·증권사들은 부자 상대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확대하면서 2, 3세를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수백 년 전통을 이은 경주 최 부잣집의 비결이 올바른 자녀교육이었던 만큼 VIP고객들 상대로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는 자녀 관리 서비스에까지 나선 것이다.

비근한 예로 삼성생명은 이달 중순 ‘가문관리’ 구호를 내걸고 서울 역삼동에 ‘패밀리 오피스’라는 간판을 달았다. 한국의 카네기·도요타·발렌베리 가문이 나올 수 있도록 집사를 자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자산가와 자녀 대상이다. 자녀의 인성과 포부를 길러주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밖에 지난해부터 하고 있는 ‘주니어 CEO’ 과정에 이어 삼성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글로벌 리더 과정’을 새로 열 예정이다. 아들을 ‘주니어 CEO’ 과정에 보낸 C세무법인 김모(62) 대표는 “경영 지식과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역삼동에 대형 PB센터를 열고 2세 상대의 서비스를 강화했다. PB 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맞춤형 입시·진로 컨설팅, 각종 세미나 및 교양강좌를 활용한 고객 자녀 간 만남 서비스를 제공한다. 본점에서는 가업승계 컨설팅을 별도로 제공한다. 이 은행 압구정PB센터의 신동일 팀장은 “자산가들은 근래 자녀의 인맥구축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맞선 행사인 PB고객 자녀 만남 서비스를 해 온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까지 27쌍의 혼인을 성사시켰다. PB고객부의 김희경 팀장은 “반응이 좋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우수고객 자녀 맞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PB고객 2, 3세대를 대상으로 요트·학습지도 같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해 말 서울 삼성동에 ‘상속증여센터’를 열어 가업승계컨설팅을 하고 있다.

증권사도 열심이다. 삼성증권이 ‘가업승계 CEO플랜 세미나 및 컨설팅 서비스’, 미래에셋증권이 ‘차세대 CEO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KDB대우증권은 우수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해외유학 입시전략 세미나·컨설팅을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는 중소기업 2세들의 리더십, 기업경영 역량 강화 교육과 네트워킹 구축을 지원한다. 2박3일짜리 단기 가업승계 전략과정과 1주에 한 번씩 16주 동안 진행되는 가업승계 차세대 CEO 양성과정이 있다. 각계 전문가들이 나와 기업 승계나 경영 관련 강의를 한다.

이 과정을 이수한 양준호(35) S&S아이앤씨 상무는 “아버지가 일군 업체를 제대로 존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크다. 후계자 양성과정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업승계센터는 이달부터 ‘차세대 CEO 경영승계 실전과정’을 새로 시작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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