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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박근혜 위원장에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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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영진
논설위원

지금 정치인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일 것이다. 2004년 당을 뚝심으로 되살려 한나라당의 재집권 기반을 마련한 그였다. 그러나 막상 2007년 대통령 선거 본선엔 나서지도 못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지 4년, 이젠 정말 대권을 잡나 싶었는데 그새 민심이 바뀌었다. 한 인간으로서 커다란 울분과 좌절을 느낄 법하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한나라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진두지휘하게 된 박 위원장은 눈꼽만큼의 좌절감도 드러낼 형편이 아니다. 4월 총선이나 연말 대선의 성패(成敗)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박 위원장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논란이 벌어지는 사안들에 대해 좀처럼 의견을 내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위원장의 의견을 꼭 듣고 싶은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지난해 5월 국회에 회부됐음에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국방개혁법안에 대한 입장이다.

 국방개혁에 시동을 건 것은 2010년에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현 정부의 안보 능력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촉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국방개혁을 밀어붙였다. 2015년으로 확정된 주한미군의 전시작전권 이양 등 국방개혁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있었다. 그러나 워낙 걸림돌이 많은 ‘혁명적’ 과제이기에 역대 어느 정권도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한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일부에선 청와대의 의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기도 했다. 악화한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책임 추궁을 면하기 위해 ‘혁신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가 제시한 국방개혁 방안은 국회에서 ‘꾸준히’ 논의됐다. 국방부 당국자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국방개혁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이해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지지 덕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국회의 대응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크게 잘못돼 왔다. 국회 논의 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여럿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방개혁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남아 있고 일부 의원은 명백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방위 의원 대다수는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데는 미묘한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듯하다.

 우선 민주통합당 신학용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의 태도다. 그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손 전 대표의 친형이 공군 예비역 준장이라고 한다. 국방개혁 법안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집단이 공군 예비역들임을 감안할 때 신 위원장이 국방개혁 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공청회 등에서 한 발언들을 보면 신 위원장은 오히려 국방개혁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신 위원장은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국방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되는 것을 지연시켜 왔다고 한다.

 여당 의원들 중 일부도 미묘한 처신을 보여왔다. 군 출신인 한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서 명백한 반대 입장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법안 내용의 부분적 문제를 지적하면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데 가담해 왔다고 한다. 이와 관련,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의중을 짐작해서 그렇게 처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에 비해 친박(親朴)으로 알려진 유승민 의원은 초기부터 국방개혁법 통과에 가장 적극적이었음을 생각할 때 박근혜 위원장의 의중은 아리송하다.

 박 위원장은 국방개혁 법안에 누구보다 관심을 보여야 할 사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회 국방위원회나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대권 주자로서 안보 문제에 대해 당연히 큰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박 위원장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법안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요청한 면담도 다른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국방개혁법은 이미 국회에 회부돼 있기에 2월 임시국회가 마지막 처리시한이다. 이를 넘기면 2015년 전시작전권 이양을 위한 준비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 개혁에 정신 없을 박 위원장에게 굳이 의견을 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