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진보의 편협’ 지적 … 투쟁보다 수권 강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2일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선거캠프에서 ‘유권자들과의 만남’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작가 김수진씨 제공]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야권의 ‘생각이 다른 쪽을 인정 안 하는 적대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설을 앞둔 22일 자신의 부산 사상구 총선 캠프에서 마련한 ‘유권자들과의 만남’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저쪽(한나라당 등 우파)을 말하기 전에 우리도 문제”라며 언급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진보진영 사람들이 좋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만, 왜 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쪽을 인정 안 하는 적대감이 문제이며, 이것이 진보진영의 품을 넓히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름 열정이 넘치고 세상이 갑갑해서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주장이 너무 강하다”며 “진보 쪽이 우리 사회의 주류적 가치가 되려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하다고만 하지 말고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야권의 지나친 투쟁성과 선명성에 대한 경계론인 셈이다. 그의 발언은 총선을 70여 일 앞두고 야권이 한나라당과 강력한 투쟁·대립 구도를 형성한 상황이어서 관심을 끈다. 사실 ‘강한 발언’은 문 고문 자신도 적잖게 해왔다. “정치검찰에 대한 확실한 청산과 문책이 있어야 한다”(지난해 12월 7일 북 콘서트)거나 “검찰이 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못된 버릇이냐”(19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1심 선고 결과 후 트위터에)와 같은 검찰에 대한 접근이 대표적이다.

 그는 정치적 진로를 확정하지 않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제외하곤 야권 대선 후보 중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부활한 노무현계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주는 울림은 작지 않다.

 그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했을까. 유력 대선주자인 문 고문이 총선·대선 과정에서 야권이 유념해야 할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곧추세우는 선명성 투쟁만으로는 정권을 잡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지지층을 중도·온건보수 세력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분석이다. 집권 가능성이 작을 때는 투쟁이 우선시됐지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보이는 지금은 안정적인 대안세력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수권(受權)세력으로서 대국적인 자세를 보이자는 뜻이기도 하다.

문 고문은 이날 “야권 정당들이 한나라당을 대신할 수 있는 믿음을 못 줘 왔다”며 “충분히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평소 생각이 드러난 것이란 분석도 많다. 문 고문은 트위터에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로 ‘운명, 대화, 공감, 동행’을 적었다. 그런 개인 성향이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다. 문 고문이 이날 이명박 정부의 실패 이유를 “실용주의자인 이 대통령이 훨씬 포용력 있게 정치할 줄 알았는데, 과거 정치세력에 대해 공존을 용납 안 하겠다는 행태를 보여 부메랑을 맞은 것”이라고 규정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 지도부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문 고문의 이 같은 시각을 어떻게, 얼마나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현 시점에선 문 고문과는 반대로 선명성과 투쟁성을 더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와 문성근 최고위원은 연일 공격적이고 격한 어조로 총선 승리 후 이명박 정부 정책의 뒤엎기를 공언하고 있다. 임종석 사무총장도 24일 “서민경제를 붕괴시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너무 크다”며 “재벌개혁을 선거의 최우선 전략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