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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이화당’ 빵집 vs 파리바게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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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호정
경제부문 기자

한 네티즌은 17일 트위터에 “잔인한 장면”이라고 썼다. 서울 대신동 연세대 동문회관 옆의 ‘파란 간판 빵집’ 얘기다. 30년 넘은 명물 빵집 ‘이화당’ 바로 옆 건물에 파리바게뜨가 26일 문을 연다.

 33㎡(약 10평) 남짓한 ‘이화당’은 1979년 개업했다. 연세대·이화여대 학생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직원들이 단골이다. 새로 여는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은 28평 규모의 세련되고 깔끔한 카페형 매장이다.

 쉽게 보면 대기업의 횡포다. ‘이화당’은 70대 노부부와 아들이 직접 빵을 구워 판다. 파리바게뜨의 국내 매장은 8월에 3000개를 넘겼다. 네티즌과 오래된 단골이 ‘이화당’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다.

실제로 설 연휴를 앞둔 이곳엔 “힘내라”며 빵을 사러 온 고객이 눈에 띄었다. 또 일부 네티즌은 ‘프랜차이즈 빵집 불매’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화당’ 주인 박성은(74)씨도 “저쪽은 빵값도 싸고 매장도 깔끔하니 아무래도 많이 가지 않겠나”라며 걱정이다. 그는 서대문구청에 “공사 현장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우리 영업에 방해된다”며 민원도 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의 점주인 김모(43)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중소 건설업체에 11년을 다니다 지난해 12월 정리해고됐다. 대출받은 돈과 퇴직금을 합쳐 2억원으로 점포를 얻었다. 그는 “40군데 넘게 점포 자리를 보러 다녔지만 이 돈으로 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이 자리엔 권리금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근처에 ‘이화당’이 있다는 걸 알고 망설였지만 주인 부부가 ‘이화당’ 건물의 소유주여서 최소한 생계 문제에선 자유롭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화당’이 있는 2층 건물은 노부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약국이 임차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횡포를 좌시해서도 안 되지만 덮어놓고 하는 마녀사냥도 곤란하다. ‘동네 빵집 지키기’가 ‘자영업자 죽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화당’의 박성은씨는 “빵 맛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동네 빵집이 30년 넘게 쌓은 실력을 자생력 삼을 수 있을지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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