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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박할때 박근혜 욕하던 사람들이 이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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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의 최대 격전지는 부산이 될 것 같다.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이 20여 년간 싹쓸이를 거듭해 ‘공천=당선’으로 통한 곳이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술렁인다. 한나라당을 향한 지역 민심은 과거와 달리 냉랭하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부산·울산·경남(PK) 상륙을 위해 총공세를 펴는 야권의 공세가 거칠다. ‘폐족이 됐다’던 친노(親盧) 세력의 ‘문·성·길(문재인·문성근·김정길) 트리오’가 선봉에 섰다. 부산 출신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행보를 보는 사람도 많다.

PK 전체 의석은 41개다. 지금은 90%인 37석을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산의 현역 의원 지지율은 10%대에 그친다. 말 그대로 바닥이다. 야권은 세차게 파고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부산 지역구에서 과반수가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민주당과 친노 세력이 다시 뭉친 민주통합당은 18일 첫 번째 최고위원 회의를 광주가 아니라 부산에서 열었다. 새 지도부가 선출된 지 사흘 만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부산은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동남풍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의에 앞서 새 지도부 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묘역을 참배했다. 한명숙 대표는 “작은 바보 노무현들이 부산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守城)을 다짐하는 한나라당은 비상이다. 당내에선 PK 다선 의원에 대한 물갈이론으로 떠들썩하다. 한나라당 텃밭이라던 부산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대책은 뭘까. 부산 4선인 김무성(사진) 의원을 17일 만나 지역 민심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산 민심이 실제로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 집권 여당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다.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이명박 정권에 관해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 하질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설득을 할 수 없다. 설득 자체를 포기한 상황이다.”

-왜 그렇게 실망감이 큰가.
“경제 문제가 가장 크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경제를 잘했다고 자랑하지만, 모두 살기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특히 물가, 청년 실업,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국민들은 삶에 지쳐 있다. 사람들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너무 오랜 기간 독점적 우위에 있었다. 책임을 묻자는 게 지역 정서다. 게다가 싹쓸이를 계속하다 보니 자당 의원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고 그에 따른 실망감이 더해졌다.”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물론 전국적인 현상인데 부산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이 겹쳤다. 상대인 민주당이 부산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거물급들이 들어오자 술렁이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뿌리가 경상도이지만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는 다르다. TK는 지역민들의 순도가 높지만 PK는 짬뽕이다. 특히 부산은 6·25 때부터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많이 들어와 눌러 살고 있다. 호남 출신도 많다. 그래서 항상 선거 결과를 보면 두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차이가 난다.”

-책임감을 느끼나.
“반성도 많고 고민도 깊다. 너무 장기간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다 오만해진 게 아닌가, 정치 개혁 마인드가 소홀했던 게 아닌가, 서민들을 위해 좀 더 정책을 개발하고 애환을 성찰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도 죽을 죄를 졌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에 가면 일부 시민이 ‘너희들이 한 게 뭐 있느냐. 전부 떨어뜨리겠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따져 보면 책임지지 않을 일로 욕먹는 게 많다. 영남권 신공항, 부산저축은행, 한진중공업이 우리가 책임질 문제인가.”

-그런 문제들이 터졌을 때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는데.
“그렇다고 부산만을 위해 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신공항 문제는 당시엔 어느 한쪽으로 결정되면 상대 지역에서 폭동이 터질 분위기였다. 결론적으론 보류된 게 잘된 것이다. 꼭 필요한 공항도 아니었다. 광적으로 몰고 간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책임이 크다. 게다가 나는 친이(親李)를 한 적도 없고, 실세도 아니었다. 원내대표를 할 때 날 보고 친이명박계 실세라고 하고, ‘MB(이명박) 양자’란 얘기까지 들었다. 권력자와 독대하는 게 실세다. 하지만 나는 이 대통령과 독대한 일이 한 번도 없다. 친박근혜계에선 스스로 걸어 나왔다. 중립적 입장에서 당을 화합시키려 했을 뿐이다.”

-영남권 신공항과 한진중공업 문제는 어떻게 풀었어야 했나.
“신공항이란 게 선거 때만 되면 ‘뭐 큰 공약 없나’ 하고 찾다가 나온 게 시작이다. 일각에서 ‘신공항만이 살길’이라는 식으로 몰고가 사람들을 최면에 걸리게 했다. 그때 정치인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안 된다 하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 나도 용기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김해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부산 언론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선 그냥 침묵했다. 한진중공업 역시 이명박 정권의 실패 사례다. 이 대통령은 공권력의 적절한 집행에 대해 용기가 없었다. 거기서 시작해 사회질서가 혼란해졌다. 촛불시위도 그렇다. 지금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광우병 괴담을 정권 초기에 얻어맞았다.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는 걸 정권을 걸고 막아야지 대통령이 뒷동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불렀다. 이런 무능한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실망한 거다. (우파와 좌파란) 두 여자를 바라보다 둘 다 놓친 경우다. 정권이란 자기 지지층의 신임을 먼저 얻고 영역을 넓혀가야 하는데, 이 정부는 자꾸 다른 쪽에 눈길을 보낸다. 그러니 양쪽이 다 화가 났다.”

-한나라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이명박 대통령이란 얘기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이상득 의원, 박근혜·홍준표 전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

-왜 그런가.
“세상 민심을 그대로 전하는 거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는 데서 오는 문제를 만들었다. 최고권력자가 정치를 해야 방향을 잡아 가는데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한다고 하니 나라가 방향을 잃었다. 그래서 이상득·이재오 의원이 정치를 했다. 잘했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나. 대통령이 신뢰를 잃고 실추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사다. 그런데 온 천하가 두 의원이 인사를 했다고 믿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왜 포함되나.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실망해서 떠나게 된 이유가 뭔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화합해서 잘해주길 바라는데 한나라당은 친이와 친박이 갈려서 화끈하게 싸우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외면했다. 그 책임이 있는 거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우리는 대통령이 6명째 실패하는 비극을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길 바랐지만 지금 이 모양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강한 게 가장 큰 이유다. 대통령 권력은 조선시대 왕보다 강하다. 모두들 비민주적 사고에 빠져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비상대권을 줄 수 있는지 머리가 혼란스럽다. 내가 친박 할 때 박 전 대표에게 쌍욕을 하던 사람들이 이젠 회의만 하면 ‘박근혜만이 한나라당을 살릴 수 있다. 비상대권을 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도록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당내 비민주적 사고도 털어내야 한다.”

-한나라당이 돈봉투 사건으로 어려움에 빠졌는데.
“당시에 나는 무소속이어서 실상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 후 입당해 원내대표가 됐고, 2010년 7월 안상수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당대회를 치렀다. 매일 회의할 때마다 ‘돈 쓰면 공개하겠다’고 겁을 줬는데 그래도 돈 쓰는 게 눈에 보였다. 돈이 흘러 다니는 게 감지됐다. 다만 증거를 잡지 못했다.”

-친이계는 2007년 대선 경선도 조사하자고 한다. 그때 박근혜 캠프를 꾸렸지 않나.
“전당대회 치르자면 동원비가 든다. 매표 문제가 아니다. 과거엔 액수가 컸지만 지금은 작아졌다. 후보자가 전국을 돌며 정견 발표 하는 데도 돈이 든다. 캠프 의원들이 돈을 썼다. 정견 발표차 경남에 내려갔을 때 내가 박 전 대표에게 ‘돈을 좀 쓰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나를 쏘아보면서 ‘내가 언제 돈 쓰라고 했습니까. 돈 쓰지 마세요’라고 고함을 치더라. 박 전 대표는 돈 문제에선 자유롭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나.
“나는 안철수 교수가 좌파가 아니라 중도우파라고 본다. 정당은 정체성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인데, 안 교수가 스스로 좌파라고 주장하는 좌파 정당과 함께하는 것은 바람직한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우파니 한나라당과 연대하는 게 더 낫다. 한나라당이 안철수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아주 미련한 짓이다.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박근혜) 대세론에 빠져 있다.”

-이번 총선 때 부산에서 문·성·길의 당선 가능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패·비리에 연루됐다는 자괴감으로 자살했다. 그런데 마치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목숨을 잃은 것처럼 거짓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노무현을 팔아 야바위 정치 장사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을 아낀다면 민주당과 통합하는 게 모순 아닌가. 지금 민주당 지지세가 늘었고 한나라당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총량에선 한나라당 지지가 더 높다.”

-영남 다선 물갈이에 대한 생각은.
“정당이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많이 당선됐다면 당에 공이 많은 사람이다. 당에서 상을 줘야 하는데 2008년 공천 때는 이 대통령이 내게 사약을 줬다. 사무총장 하던 이방호는 서 푼짜리 권력 얻었다고 동료를 다 죽이고, 연세대·부산고 나온 사람들에게 공천을 줬다. 이번엔 25% 자르겠다고 덤비는데 참 어리석다. 교체지수란 게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하겠느냐’고 부인에게 묻는 것과 같다. 일률적으로 교체비율을 정하는 건 난센스다. 이런 비민주성 때문에 우리 정치가 퇴행을 겪는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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