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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해도 일손 부족" 불황이 낳은 새 직업 '중고폰 감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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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3일 대전 ‘T에코폰 단말 관리센터’에서 감정사가 갤럭시S 중고폰을 검사하고 있다.

국내에 19명만 종사하는 직업이 있다. 이 일을 하려고 축구선수 출신부터 보디빌딩 강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름하여 ‘단말 감정사’. 중고 휴대전화를 감정해 등급과 가격을 매기는 사람들이다.

 13일 대전시 서구 탄방동 SK둔산사옥 8층 ‘T에코폰 단말 관리센터’. 감정사들이 한쪽 눈을 전자현미경에 갖다대고 중고폰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다. 이 센터는 지난해 7월 SK텔레콤이 중고폰 판매 사업을 시작하면서 문을 열었다. 구매자·판매자 모두 믿을 만한 중고폰 값 결정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 중고폰을 쉽게 모을 수 있어 대전사옥이 낙점됐다.

 이후 센터는 인터넷에 ‘단말 감정사’ 구인광고를 내고 네 차례로 나눠 면접을 봤다. 단말기 제조사 AS센터 출신을 우대했지만 이들만으로 인력을 다 채울 수는 없었다. 휴대전화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도 선발했다. 헬스트레이너 출신 장동원(34)씨는 면접이 끝날 무렵 주섬주섬 품속에서 두루마리 족자를 꺼내 펼쳐 보였다. ‘고객 감동과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회사’라고 쓴 붓글씨였다. 우람한 근육질의 장씨는 “차분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썼다”고 설명했다. 한때 모토로라 AS센터에서 근무했던 이장우(29)씨는 즉석에서 종이를 꺼내 휴대전화를 정밀하게 그려 보였다. “제가 이 정도로 단말기를 잘 압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대 부상으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최원철(25)씨는 “운동 견뎌낸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꼭 뽑아달라”는 말로 면접관 마음을 흔들었다.

 입사 후 한 달간 훈련이 이어졌다. 휴대전화 분해·조립부터 전자현미경으로 메인보드 보는 법, 기능 테스트 방법을 반복 훈련한 뒤 실무에 투입됐다. 이들은 20여 가지의 테스트를 한 뒤 중고 단말기를 N(New), A, B, C의 네 등급으로 나눈다. 이날 부산에서 온 갤럭시S폰 한 대는 ‘테두리 찍힘 있고 화면 내 먼지 다량 유입’이라는 의견서와 함께 ‘B등급, 감정가 13만5000원’의 평가를 받았다.

 감정사들이 중고폰 한 개를 감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30분. 한 명이 하루 30여 대, 센터 전체로는 700대가량을 감정한다. 이달 들어 의뢰 물량이 하루 1000~1200대씩 몰려든다. 전원 10~11시까지 야근해도 일손이 부족하다.

관리센터 임재만 팀장은 “일감이 몰려 회식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며 “감정사 수를 연내 두 배 가까이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정 결과는 고객센터 직원들이 의뢰인에게 일일이 전화해 알려준다. 판매 의사를 확인하면 감정가만큼 휴대전화 요금을 감면해주고 공기계일 경우 통장으로 송금해준다. 임 팀장은 “가격이 안 맞아 판매를 거절하는 비율은 1%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매입된 휴대전화는 인터넷 T스마트샵(tsmartshop.co.kr) ‘T에코폰’ 코너에 진열된다. 지난해 7월 150대가 팔린 에코폰은 10월에 1500대, 12월엔 1만4000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다. SK텔레콤 세일혁신팀 손홍현 팀장은 “품질과 가격을 믿을 수 있게 되면서 중고폰에 대한 잠재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약정 없이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쓰고자 하는 알뜰족이 지금 써도 성능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폰3GS, 갤럭시S를 적극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아이폰3GS와 갤럭시S는 샵에 오르면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팔려나간다. ‘T에코폰’ 코너에서 팔린 스마트폰의 평균 판매 가격은 14만원으로 신형 단말기 값의 15%에 불과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교체주기는 26.9개월로 일본 46.3개월, 인도 93.6개월에 비해 훨씬 짧다”며 “에코폰 판매가 활성화되면 자원을 아낄 수 있는 데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어 윈-윈”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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