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점원의 음악 상식

중앙일보

입력

이런 일이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인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을 사러 서점에 갔다.

한참을 기다린 후 돌아온 점원의 대답. " 〈고리오 영감의 발작〉이란 책은 없네요. " 시내의 유명 음반점에 들러 재즈 그룹인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앨범을 찾자 엉뚱하게 클래식 코너에 갔다 온 점원의 말 또한 걸작이다.

"그런 오케스트라는 없는데요. 혹시 지휘자 이름 아세요?"

직업을 가진다는 것, 어떤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 자신과, 나의 일에 관련된 집단 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생계의 수단이라는 1차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직업관이 담겨 있다.

그 숱한 관계에는 다양한 규칙과 관습과 의무와 약속이 존재하는데, 보다 원활하고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것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이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앞서 언급한 점원들에게 '프로페셔널' 의 정신이 있었다면 그들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췄을테고 그런 엉뚱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음반시장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대다수 음반 도.소매상 경영자들의 직업의식 부족을 들 수 있다.

많은 음반업자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과 선택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음반점에 들어가 보면 곧 드러난다.

유행과 무관한 음악이나 오래된 가수의 앨범을 얘기해 보라. 십중팔구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비틀스의 음악을 알고 싶은데 어떤 앨범이 좋은지를 물었을 때 자신있게 설명해주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음반업은 분명 물건을 팔고 이윤을 남기는 장사다. 때문에 장사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음악 상식 따위와는 상관없이 잘 팔리는 몇몇 앨범만 다량으로 구비해 놓으면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약속과 의무를 생각해야 한다. 규모가 어떻건 적어도 레코드 가게의 간판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문화 전파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이 지닌 문화적 욕구 충족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적인 음악시장의 형성은 다양한 음악의 소개가 이루어지는 방송 매체, 상업성으로만 일관하지 않는 레코드사, 열린 귀로 스스로 음악을 판단하는 소비자의 삼위일체가 이뤄진 후라야 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이전에, 비틀스의 정규 앨범 13장을 모두 갖춘 음반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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