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년 ‘필름 왕국’ 코닥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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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꼭 80년 전인 1932년.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인 ‘이스트먼 코닥’의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당시 77세)이 권총 자살을 했다. 유서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내가 할 일은 끝났다. 뭘 더 기다리겠나.” 80년의 시간이 흐른 2012년. 그가 세운 회사가 같은 운명을 맞을 처지에 놓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설립 131년을 맞은 코닥이 수 주일 안에 파산보호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코닥은 현재 보유 중인 특허권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산보호 신청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코닥이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주가는 이미 주당 1달러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최근 1년 새 90% 넘게 빠졌다. 3일 뉴욕증권거래소(NYSE)로부터 “6개월 안에 주가를 1달러 위로 못 끌어올리면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그런데 WSJ 보도 이후 주가가 더 떨어졌다. 하루 새 28% 폭락해 주당 0.47달러까지 주저앉았다. 답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1970~80년대만 해도 코닥이 이런 상황에 놓일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1967년부터 이 회사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로버트 셰인브룩(64)은 “당시 코닥은 현재의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였다”며 “사내 대학엔 젊은 인재가 넘쳐났고, 점심시간엔 강당에 모여 영화를 보거나 농구를 즐기곤 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오랫동안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코닥의 순간(Kodak momen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코닥이 곧 카메라 필름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는 얘기다. 1976년 이 회사의 미국 필름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신기술 개발이 늦었던 것도 아니다. 코닥의 몰락을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회사는 역설적이게도 코닥 자신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1975년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놓고도 이 기술로 돈을 벌지 못했다. 변화를 제대로 읽고 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뜻이다. 선택과 집중에도 실패했다. 80~90년대 코닥은 화학·의료용품을 비롯해 욕실 세정제까지 여러 사업을 기웃거렸다. 이후 프린터 사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역시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1~9월 이 회사의 프린터 시장 점유율은 2%대에 불과하다. 퇴직자에 대한 과도한 복지도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 WSJ는 회사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익이 나지 않는 신규 사업과 엄청난 퇴직자 연금·건강보험 비용이 다른 회사가 코닥을 인수하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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