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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계속 나오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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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재현
사회2부장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르면 이번 주 중 마무리될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초순 서울중앙지검이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지 두 달 만이다. 대검 중수부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내용을 토대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가능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법리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수사팀은 최 회장에 대한 기소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무혐의를 주장하는 SK 측의 반론도 만만찮다. SK 측의 불만은 “수사팀이 최 회장을 타깃으로 삼아 무리한 수사를 벌였고, 혐의를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하는 검찰 수뇌부를 고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사 실무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수사 과정에 대한 비판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번 수사가 ‘스마트(smart)’한 것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것은 2010년의 한화그룹 사건처럼 ‘오기(傲氣)수사’가 발동된 측면이 있어서다. “고질적인 환부만 깔끔하게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를 하라”는 한상대 검찰총장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줬다. 압수수색 이전부터 1년 가까이 이 부서 저 부서에서 SK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는 등 동네방네에 소문을 다 내며 특수수사를 한 점도 문제다. “오랜 기간 은밀한 내사를 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비리를 정확하게 솎아내라”는 특수수사의 공식과는 반대방향으로 튄 것이다.

 그룹 CEO급 인사를 비롯해 무려 150여 명의 SK 직원을 검찰로 불러들여 “검찰 때문에 기업의 업무가 중단됐고, 향후 투자 및 사업계획도 제대로 못 세우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듣게 됐다. 물론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사건 변호를 해온 변호인단의 전략적 미스가 수사를 장기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검찰에서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진술을 애매하게 한 것도 검찰이 최 회장에게로 수사를 확대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날로그’ 형식의 저인망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일선 검사들의 세련되지 못한 수사 태도는 결정적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나 ‘스폰서 검사’ 파문을 일으킨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스타일리스트’라는 비판을 받았던 김준규 전 검찰총장 등에게도 책임이 있다. 국가 사정(司正)기관 총수로서의 임무와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후배 검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최근 검찰에서 수사 중인 제일저축은행 비리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유동천 회장의 입에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조직의 도덕적 흠결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수사권’이라는 위험한 권력을 마구 휘둘러대는 후배 검사들의 말발이 점점 거세지는 현상을 초래했고, 이는 검찰 조직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와 불신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큰 칼을 어깨에 둘러메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마을사람들을 불안케 하는 사람이 연상된다”는 비아냥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검찰의 수사 관행이 임진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겹쳐 있어 각종 정치적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연히 공안 및 특수수사의 수요가 커질 공산이 크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정치적·경제적 사건에서 검찰이 SK 수사처럼 오랜 기간 동안 TV 연속극의 주인공처럼 계속해 등장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들도 원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국민들을 위한 서비스기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통치고 윽박지르는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한상대 검찰총장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박재현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