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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무 괴롭다던 날, 그때 신고만 했더라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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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권모군의 같은 반 친구 3명과 담임교사가 29일 겨울방학 종업식을 마친 후 권군의 유골이 안치된 도림사 추모공원 내 추모관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29일 낮 12시쯤 대구시 동구 도림사 추모관. 납골당 안으로 교복을 입은 중학생 3명과 교사가 들어섰다. 같은 반 학생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20일 자살한 중학생 권모(13)군의 담임 김모(33) 교사와 학급 친구들이다. 스승과 제자들은 함께 하얀 국화 화분을 바쳤다. 그리고 권군의 이름이 적힌 유골함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김 교사는 유골함 앞 유리문을 만지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은 권군의 유골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 3명은 권군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A군(14)은 권군이 투신하기 전날인 19일 통화를 한 친구다. A군은 “친구가 나 오늘 정말 많이 맞았다. 너무 괴롭다”고 울먹였다고 했다. 그는 “그때 신고만 했어도 네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학기 초부터 단짝 친구였다는 B군(14)은 “얼마 전 친구가 폭행당한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리려 했지만 (권군이) 말려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다른 친구는 “괴롭힘을 당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며 말끝을 흐렸다. 유골함 옆에는 권군이 평소 쓰던 휴대전화와 MP3 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족이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있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했어요. 조용한 편이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친구였는데….” 이들은 “(권군이) 혼자 있을 때는 연습장에 만화를 그리고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친구야, 잘 있어. 그곳에서는 괴롭힘 당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권군이 다녔던 학교 시청각실에서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방학식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열린 행사에는 같은 반 친구와 교사 등 60여 명이 모였다. 권군에 대한 묵념에 이어 서교현 교감의 추도문이 이어졌다. “선생님도 아프고 친구들도 가슴이 아프단다. 부디 잘 가거라. 가서 편히 쉬거라.”

 아이들과 교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 교감은 “(우리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프다. 너의 아픔, 상처를 잊지 않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며 추도사를 마쳤다. 추모식은 교실 내 TV를 통해 전교생에게 방송됐다. 방학식을 마친 학생들은 취재진을 향해 “기자 아저씨, 더 이상 우리 학교 나쁘게 쓰지 말아 주세요. 저희도 가슴이 아파요”라고 소리쳤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행사에는 이 학교 1~3학년 학부모 대표 3명도 참석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권군을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상습상해·상습폭행·상습공갈·상습강요)로 가해 학생인 서모(14)·우모(14)군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가해 학생들이 권군의 집에서 물고문을 한 혐의도 추가했다고 밝혔다. 현금 14만5000원 등 96만8000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도 적용했다. 영장실질심사는 다음 달 2, 3일 열릴 예정이다. 이들의 혐의 중 상습상해는 3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가 중해 14세의 중학교 2학년생이지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신진호·위성욱·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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