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주고 샀는데…황무지라니

조인스랜드

입력

[권영은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는데, 황무지라니…".

지난 2006년 평창동에 남아있는 미개발지를 13억원 가량에 매입한 강모씨(60). 그는 당시 이 땅을 중개한 부동산 업자로 부터 `지금은 원형택지(지목은 대지이지만 사실상 임야에 가까운 땅)여서 건축행위가 제한되고 있지만 조만간 서울시가 개발 제한을 해제할 것`이라는 솔깃한 얘기를 들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아 매입을 주저했었다.

하지만 이 업자가 종로구의회 소속 A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한 이후, 강씨는 이 땅의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집 짓게 해준대서 샀는데…

A의원 역시 `현재 지구단위계획(지구단위계획은 개발을 할 때 적용되는 용적률, 건폐율 등의 밀도나 높이 등을 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수립된 상태로 조만간 개발 제한이 풀린다`며 `대신 모든 땅에 대한 건축행위가 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사도 등을 감안한 전문적인 설계가 필요하고 그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강씨는 토지계약을 체결한 이후, A의원이 소개해 준 설계사 B교수를 만나 계약금 2500만원을 건넸다. A의원 말대로 설계도 마치고 건축을 위한 모든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이 땅은 여전히 황무지로 남아있다. 종로구가 마련한 지구단위계획이 여전히 서울시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서다.

이 땅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92번지 일대 원형택지(19만㎡)의 실제 이야기다. 이 땅은 전체 면적 85만8000㎡ 가운데 지난 1968년 정부가 민간에 주택가로 66만8000㎡를 분양한 이후 남은 땅이다.

하지만 1974년 정부는 정부청사 건립과 국민연금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문제의 땅 19만㎡를 또 다시 민간에 주택가로 분양했지만, 분양을 마친 이후 다시 건축행위를 제한해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이 땅을 분양받은 소유자는 물론 강씨와 같이 원분양자로부터 이 땅을 사들인 계약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시의회와 구의회, 종로구청은 2001년 2003년 2006년 총 3회에 걸쳐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면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번번히 반대에 부딪혔다.

북한산 자락의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데다, 서울시도 지난 2000년부터 북한산 일대의 자연경관 훼손을 막으려고 개발 행위를 제한하도록 조례를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평창동 땅값이 워낙 비쌌는데 3.3㎡당 1000만원도 안 되는 값에 토지를 살 수 있고, 거기에 집까지 지을 수 있다고 해서 기존에 살던 집까지 처분해 땅값을 치렀다"며 "하지만 지금은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다"고 토로했다.

사기? "아닙니다"

이어 "설계비와 소개비 명목으로 돈까지 뜯어갔으니 이 것이야 말로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A의원과 B교수의 얘기는 달랐다.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A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에는 서울시도 해당 땅의 건축허가 제한을 해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며 "내년 1월에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재심의할 예정이어서 사기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B교수 역시 "(강씨에게) 설계비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해놓은 상태이지만 당장은 사정이 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것 뿐,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건축 제한이 해지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특히나 원형택지라면 아무리 싼 값에 살 수 있다고 해도 남의 말만 듣고 거래에 나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