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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건강보험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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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프레드헬름 슈니츨러
삼성화재 상품R&D센터장

산업화가 덜 된 나라에서는 중증 질환으로 가계 재정이 파산할 우려가 항상 존재하는 반면 공적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사회보장과 보완적인 민영건강보험이 잘 조화된 유럽 국가들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재정적 부담을 별로 심하게 겪지 않는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가족 중에 암·뇌출혈 등 중증 질환이 발생하면 환자 본인은 물론 모든 가족이 재정적 위협을 받는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부분에 해당하는 의료비 중 일정 부분을 보조받는다. 국민건강보험이 국가 의료체계에서 핵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급여 부분, 즉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고가의 치료항목에 대해서는 개인이 직접 부담하고 있다. 이 비용이 전체 의료비의 4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가계재정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급여 부분의 의료비를 충당해 주는 것이 민영건강보험의 주요 기능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민영 실손의료보험을 통해 보장되는 의료비는 전체의 약 7%에 불과하다. 보장비율이 낮은 것은 아마도 과거에 판매된 민영건강보험은 특정 질병과 치료를 제외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장과 저축성의 일체형 상품을 선호하는 국민성 때문에 의료비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민영건강보험의 확대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해묵은 논란으로 이것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도 주요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민영건강보험의 확대가 사회 양극화를 야기하고 부자들만 유리하게 한다, 영리병원 논의와 맞물려 의료체계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민영건강보험 가입자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다. 더구나 국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의 고가 치료비 부담이 가계에 경제적 어려움을 주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민영건강보험은 부유층보다는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 더 필요하다.

 건강보험 자체는 공영이든 민영이든 사회적 부조에 기반하는 것이다. 국가 재정 여건 등으로 인해 공영건강보험으로 모든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민영건강보험의 ‘사회연대 및 부의 재분배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민영건강보험 가입자에게는 세제혜택을 강화하고, 민영건강보험사에는 의료수가 결정 과정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 등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영건강보험사에 소속된 의료전문인력과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료기관이 협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서민도 구입 가능한 건강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등 사회 양극화를 방지하면서도 소비자가 적정 가격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다양하게 마련될 것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건강보험체계 안에서 공영건강보험과 민영건강보험의 상호 보완적인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한다면 국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프레드헬름 슈니츨러 삼성화재 상품R&D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