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나이프'처럼 예리한 감성의 소설 4권

중앙일보

입력

때로는 책의 표지의 단정함과 장정의 우아함에 매료돼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잖아요. 신중하지 못함을 탓하실 수도 있겠지만, 필경 참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펼쳐 든 책의 알맹이가 껍데기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출판사에 대해 화를 내게 되거나 혹은 경솔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장정과 표지의 아름다움에 걸맞는 아름다움이 내용에서도 느낄 수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됩니다. 좋은 내용의 책을 허술한 장정의 책에 끼워넣은 출판인들의 무성의함보다는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누가 이렇게 예쁘게 책을 포장했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그 책을 더 아끼게 됩니다.

엠마뉴엘 베른하임의 짧은 소설 4권은 그래서 눈에 띄었습니다. 두 해 전 메디치상 수상작인 〈그의 여자〉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지만, 그 뒤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지요. 이번에는 그이의 초기작품 〈잭 나이프〉와 〈커플〉을 새로 낸 것입니다. 진한 청색, 연두색, 분홍색, 주황색의 표지가 참 자극적이면서도 단정해 보였고, 1백 쪽이 약간 넘어가는 얄팍한 두께의 책이어서 부담도 덜하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1백쪽의 작가'로 알려진 엠마뉴엘 베른하임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입니다. 55년 파리에서 태어나 일어학을 전공한 그이가 처음 소설을 쓴 것은 85년. 그때부터 4년마다 한 권씩 12년만에 4권의 1백쪽짜리 소설을 써냈습니다.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텔레비전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4권의 '1백쪽 짜리 소설'들은 모두가 여성의 괴벽을 다르고 있습니다. 2년 전에 나온 〈그의 여자〉에서 작가는 불완전한 소유에 대한 강박관념이 실은 사랑의 장애물이 아니라 열정의 자극제임을 드러냅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도덕 교과서식의 가르침과는 판이합니다.

40대의 유부남 건축가 토마스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는 30대의 내과의사 끌레르가 그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이야기는 끌레르의 시각에서 끌어나갑니다. 토마스에 대한 열정은 끌레르의 생활 전체를 지배합니다. 끌레르는 토마스와의 만남을 연상할 수 있는 물건들을 책상 서랍 속에 차곡차곡 모으지요.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 미처 사용하지 않았던 각설탕, 토마스의 음성이 담긴 자동응답 전화기의 녹음테이프, 어느 날 3개씩이나 소비했던 콘돔 봉지 까지. 끌레르처럼 물건을 통해서 성적 만족을 얻는 것을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하지요.

끌레르는 수집품에서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그려내고, 그 상상 속의 상황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유부남인 토마스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휴가를 지내는 장면까지 아주 리얼하게 상상하지요. 독자는 끌레르의 상상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유부남이기에 끌레르는 토마스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어요. 그 불완전한 소유를 너무 아쉬워 하지만, 그게 사실은 토마스를 향한 열정이었음은 나중에 극적인 반전을 통해 밝혀집니다. 매일 밤 정확하게 1시간 15분씩만 머무르다 돌아가는 토마스가 미혼자였음을 고백하는 겁니다. 완전한 소유를 위해 애면글면하던 끌레르의 정열이 한 순간의 반전에 의해 허무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끌레르는 페티시즘의 대상이었던 토마스와 관계된 물건들을 서랍속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불완전한 소유를 향해 나아갑니다. 방금 떠난 남자가 떨어뜨리고 간 성냥. 그게 다시 끌레르의 책상 서랍 속에 놓이게 됩니다. 거기서 소설은 끝납니다.

소용돌이 치듯 시작하여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끝난다는 혹자의 평처럼 베른하임의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극적입니다. 또한 그 뒤의 상황에 대해 예측 가능한, 그러나 함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상으로 끝나지요. 그녀의 문장 또한 대단히 독특합니다. 부분적으로는 대단히 외설적일 수도 있는 상황을 건조한 문장으로 처리하지요. 어쩌면 너무나 건조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색깔 짙은 내용이기에 독자에게는 더 진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처음 소개되는 베른하임의 초기작 〈잭 나이프〉도 역시 소용돌이 치듯 시작됩니다. 파리의 지하철에서 빠져나온 20대 후반의 엘리자베스는 뛰어서 집에 도착한 뒤 곧바로 욕실로 가서는 손바닥과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며 엷은 미소를 짓는 것이 이 소설의 첫 페이지 상황입니다.

10년 째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던 잭 나이프에도 피가 묻어 있었지요. 엘리자베스는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이 잭 나이프로 누군가를 찔렀음을 상기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상처를 입힌 그 사람을 찾고 싶어합니다.

잭 나이프에 피가 묻었던 날, 지나온 지하철 역들을 돌아다니며, 등에 칼로 찔린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는 사건이 접수된 것이 있는 지를 조사해 봅니다. 살인범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사관으로 위장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결국 그녀는 그날 난데없이 자신의 잭 나이프에 의해 등이 찔렸던 사람이 '세실 폭스'라는 이름의 영국의 연극배우임을 찾아내지요. 그리고 영국으로 그 남자를 만나러 갑니다.

엘리자베스를 만난 세실은 얼마 뒤 파리에서 엘리자베스와 동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세실을 만난 뒤로 자신이 잭나이프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잠든 세실의 등에서 작은 흉터를 발견하지요. 바로 자신의 잭 나이프가 삽입됐던 자리인 겁니다.

엘리자베스는 세실의 흉터에 감미로운 키스를 하고, 두 사람은 깊은 정사를 나눕니다. 그 동안 엘리자베스는 세실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에 화장도 하고, 좋은 옷도 사 입어봤지만, 세실은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까닭을 그녀가 이제는 알 수 있었습니다. 세실이 자신을 사랑한 것은 좋은 옷이나 아름답게 화장한 얼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세실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여자를 소유하고 싶었던 겁니다.

자신의 흉터를 확인하고, 키스를 했던 엘리자베스와의 섹스. 그건 세실에게 소유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었지요. 그 뒤 세실은 차츰 엘리자베스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걸 엘리자베스도 알아챕니다. 완벽한 소유를 이룬 세실은 엘리자베스를 떠나려 하고, 엘리자베스는 세실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그게 이 짤막한, 그러나 잭 나이프의 예리한 칼날처럼 섬뜩한 소설의 끝 부분입니다.

베른하임의 4권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로 통하는 점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가 평범에서 벗어나는 괴벽을 가지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입니다. 베른하임은 그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된 소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의 의미를 묻고 또 묻고, 그렇게 묻다가 이제는 그걸 묻는 일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시절에 진부하지 않은 문장으로 사랑의 의미를 삽상하게 전하는 소설들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