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국내 인사들은 그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이제 그와의 만남은 역사가 됐다. 다음은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그를 접촉했거나 지켜봤던 인사들이 말하는 ‘김정일’.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00년 방북 시 겪은 얘기)=“김 위원장이 아버지에게 평양 시민들을 가리키며 ‘내가 가는 데마다 나와서 환영해 주지만 사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잘 압니다’라고 했다더라. 그러곤 ‘꿈에서 돌팔매를 맞았는데 돌 던진 사람이 첫 번째 미국 사람, 두 번째 남한 사람, 그리고 북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 본인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2000년 8월 국내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면담)=“정상회담 마지막 날 오찬에서 김 위원장이 ‘박 장관 선생, 노래나 한번 불러보시라’고 하길래 ‘내 곁에 있어줘’라는 노래를 불렀다. 김 위원장이 ‘앵콜’을 외치더라. 내가 ‘남한 출판물에 외래어가 많다고 뭐라고 하시더니 앵콜이란 말씀을 쓰시냐’고 농담을 하고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불렀더니 김 위원장이 ‘장관 선생은 국민예술가이십니다’라고 칭찬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배석)=“겉으로는 자신만만해 보였는데, 회담 마지막 날에 당 중앙군사위원들만 불러 오찬을 하더라. 당시 군사위원회 간부들의 거침없는 태도를 보며 뭔가 ‘위원장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2002년 5월 방북. 다음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밝힌 내용)=“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내가 ‘남북이 교류를 강화
하면서 조금씩 서로 맞춰나가야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하자 ‘이산가족 문제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과 민간인의 생사 확인 문제는 지금 당장해야 합니다’라고 흔쾌히 동의했다. 만찬이 끝날 무렵 김 위원장이 ‘어떤 경로로 돌아가십니까’라고 물어 ‘베이징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라고 하자 ‘굳이 먼 길로 돌아가실 필요가 있습니까’라며 생각지도 못한 제의를 해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수 있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2005년 6월 특사로 면담)=“5시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북한의 고민을 솔직하게 말했고,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남북한 통행 활성화에 의지를 보이며 ‘금강산 관광할 때 승용차를 몰고 와도 좋다’고 했다. 내가 ‘방문자가 북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자 ‘그런 걱정 말라. 넘어오는 족족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다. 내게 ‘다음번에 오면 폭탄주를 하자’고도 했다.”
▶한나라당 김장수 전 최고위원(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 수행)=“당시 노무현 대통령 부부, 나,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김 위원장이 식사를 했는데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것들을 딱딱 던졌다. 해주 개항을 언급하며 인민무력부장에겐 군 부대를 어떻게 어떻게 배치하라고 한 뒤 ‘문제없지?’라고 하니까 인민무력부장이 ‘예! 이상 없습니다’라고 하더라.”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2007년 노 전 대통령 수행)=“회담 중 의제마다 ‘그건 좋다’ ‘가능하다’ ‘어렵다’ 등으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우리가 말할 내용을 미리 알고, 대안을 다 갖고 있더라.”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2000년, 2007년 1·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배석)=“2007년 정상회담 당시 베이징 올림픽에 응원단만 단일팀을 꾸리게 됐다. 김정길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선수단도 단일팀으로 해달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남조선은 88서울올림픽도 하고 선수들 기량도 높지 않습니까. 우리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했는데 단일팀이 되면 못 갈 것 아닙니까’라고 하더라. 김 회장이 ‘쿼터를 만들어서라도 북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웃음을 멈추고 갑자기 정색하면서 ‘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스포츠를 그렇게 정치화해서야 되겠습니까. 없던 일로 합시다’라고 했었다.”
양원보·임미진·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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