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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 나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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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은희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서울 강남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이번 일이 남북통일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JTBC 제공]

“납치는 용서할 수 없지만 명복을 빕니다.”

 1978년 강제 납북됐다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85)씨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감춰뒀던 얘기를 꺼냈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의 르네상스 호텔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최씨는 “(사망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하다고 해도 그렇게 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은 참 안됐고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 제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사람이 일단 세상을 떠났으니 안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씨는 78년 1월 홍콩에서 머물던 중 북한 공작원에게 강제 납북됐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은 그해 7월 납치됐다. 신 감독은 2006년 작고했다.

 최씨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김 국방위원장의 자세한 행동까지 기억했다. “납치를 당해서 일주일 후에 회식 석상에 초대를 했다. (김정일이) 현관에 마중을 나왔는데 ‘최 선생’ 하고 부르면서 ‘제가 어떠냐,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으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당시 (제가 납치돼)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피곤하고 그랬는데 기분 전환을 위해서 그런 조크를 하더라. 옆에 서 있던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고 회고했다.

1978~86년 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한 신상옥(왼쪽)·최은희씨 부부.

 최씨는 남편 신 감독과 함께 8년간 북한에 억류된 채 영화를 제작했다. 86년 3월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최씨의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기도 하다.

 최씨는 신 감독과 함께 김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설립하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불가사리’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신 감독이 북한에서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84년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최씨는 ‘소금’으로 85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양쪽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김정일 위원장이) 입이 이만하게 찢어져서 좋아하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하고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작품을 기획하면 무조건 창작을 해서 (영화로) 찍게 하고 뮤지컬하고 가극 같은 것도 본인이 직접 검열을 하고 좋다 나쁘다 직접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연회 석상에서 노래가 연주되면 직접 지휘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북한 동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미국 스테이크가 이만한데. 우리는 그것을 다 먹지 못해서 버리잖아요. 미국으로 탈출한 뒤에는 이북 동포 생각에 얼마 동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어요. 나는 정치는 모르지만 이런 기회에 남북이 잘돼서 통일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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