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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펜, 정부도 외면한 슬럼가 살려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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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펜실베이니아대 네터센터는 대학과 지역사회 간 연결고리 역할을 통해 지역 발전을 선도했다. 서필라델피아에 있는 찰스 R 드루 초등학교 학생들이 펜실베이니아대 학부생들의 지도로 네터센터가 개설한 ‘바른 먹거리 선택을 위한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네터센터는 2009-2010년 학기동안 모두 61개 지역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송세련 교수

흔히 유펜(UPenn)으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다. 그러나 대학이 위치한 서필라델피아는 30년 전만 해도 슬럼가였다. 잘나가는 명문대가 있다 해도 동네에 도움이 되는 건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슬럼가를 살려낸 건 대학의 지식봉사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펜실베이니아대의 ‘네터센터(Netter Center)’가 있었다.

 네터센터는 1980년대 단과대학의 일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92년 네터가(家)가 대규모 기부(1000만 달러)를 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어 지역사회로 봉사·참여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대학과 지역사회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다.

 현재 네터센터에는 50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연 100명에 가까운 교수, 학부 정원의 18%에 달하는 2100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네터센터는 대학이 정부와 지역사회 간의 ‘적극적인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네터센터에서 만난 아이라 하커비 박사는 “센터에 1000만 달러의 기금이 있지만 매년 필요한 예산의 75%는 정부에서 나오는 각종 형태의 사업지원금으로 충당된다”며 “센터는 이를 대학의 연구, 지식, 봉사인력 및 추가 자금지원과 잘 엮어 지역의 학교, 교회, 자선단체, 직업훈련소,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하커비 박사는 네터센터의 설립단장이자 이 대학 부부총장이다.

 네터센터의 등장 이후 펜실베이니아대는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이웃 학교(Best Neighbor)’로 꼽히게 됐다.

 하커비 박사는 “19세기 중·후반 미국 연방법에 따라 ‘토지가 증여돼 생긴 대학들(Land Grant Universities)’은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구해 사회에 전파하는 것이 법적인 목표”라며 “미국의 대학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에 기여하라는 ‘미션’을 갖고 탄생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토지 증여 대학’의 수는 미국에 80개가 넘는다. 버클리·미시간·오하이오 등 대부분의 주립대와 퍼듀·코넬 그리고 MIT 대학 등이 이렇게 특정한 목적으로 토지가 주어진 대학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도 사립대학이지만 벤저민 프랭클린이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깔고 설립한 대학”이라고 설명했다.

 네터센터뿐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의 ‘보츠와나 유펜 파트너십(Botswana-UPenn Partnership)’은 대학이 국제적인 책임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전형이다. 처음 4명의 의사가 보츠와나로 에이즈 감염자 치료를 위해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지금은 65명의 이 대학 직원이 현지에 상주하면서 매년 100명 이상의 의대생과 교수들이 진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대학만큼 지식과 기술, 인력이 영속적으로 모여 있는 곳은 드물다. 대학은 그러한 자원을 사회를 위해 활용해야 하고, 정부는 대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정부나 대학이나 무책임함을 넘어선 사회에 대한 배신 행위다.

필라델피아=송세련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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