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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척이 2000척 단속” 명량해전도 아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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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12척으로 133척의 왜선과 맞섰다. 한 척이 열 척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비장한 각오와 조류를 이용한 전술로 승리를 거뒀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서해에서는 명량해전 못지않은 ‘EEZ(배타적경제수역)해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무장에 가까운 15척의 단속함으로 2000척의 불법조업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서해어업관리단. 1966년 서해어업관리단이 생긴 이래 최초의 여성 어업감독 공무원(9급)인 강효정(26·여)씨를 통해 불법 중국 어선 단속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2월 부경대 해양생산학과를 졸업한 그는 배를 타고 싶어 어업관리단에 지원했다. 올해 10월 임용된 뒤 지난달부터 단속선에 승선해 백령도부터 제주도까지 서해 EEZ 현장 단속을 나가고 있다. 그의 첫 현장 경험은 지난달 16일이었다. 15명의 단속지도원과 함께 무궁화15호(1200t)를 타고 흑산도 서방으로 나갔다.

이튿날 새벽 무허가 중국 어선과 맞닥뜨렸다. 사이렌을 울리고 경고방송을 수차례 했지만 중국 어선은 못 들은 척 도망쳤다. 강씨는 “수십 척이나 되는 중국 어선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나포하려고 고무보트(고속단속정)에 옮겨 타는데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직 출항이 두 차례뿐이지만 그가 본 중국 어부들은 해적에 가까웠다. 단속선이 접근하면 날카로운 그물망을 능숙하게 설치하고 배 곳곳에 쇠꼬챙이를 꽂았다. 강씨는 “그물망을 피하려면 배 뒷부분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배 뒷부분을 타고 올라가다 바다에 빠지면 스크루(동력 전달 회전장치)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법 중국 어선이 증가하고 있지만 어업관리단은 인력 및 장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동·서해 어업관리단이 단속한 중국 어선은 2009년 15척에서 올해 168척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강씨는 “한 번 출항하면 8~10일 정도 단속을 하는데 그동안 3교대로 근무하며 4시간밖에 못 자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선도 25명 내외가 정원인데 평균 15명밖에 못 태운 채 단속에 나선다”고 말했다.

어업관리단에서 추정하는 중국 불법 조업선은 현재 2000척 수준. 허가받은 조업선까지 합치면 3700여 척을 감시해야 한다. 강씨는 “배에 올라 바다를 새까맣게 메운 중국 어선을 보면 때로는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고 고백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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