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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공자대회서 조화·우애 외친 다음 날 … 한국대사관 쇠구슬 피격, 환구시보 “해경 사망 하찮은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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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 베이징의 한국대사관 유리창이 쇠구슬에 맞아 금이 간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 하찮은 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우리 해양경찰이 중국 어민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13, 14일 이틀에 걸쳐 낸 사설에 연속으로 실린 구절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이 벌금을 수십만 위안으로 올려 중국 어민의 철저한 파산을 야기했다.”

역시 14일자 환구시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어린 세 자녀를 남겨두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우리 경찰과 유가족에 대한 위로의 문구는 찾을 수도 없다. 환구시보의 일방적 보도는 대국으로 올라서는 중국의 품격을 크게 손상시키는 행태다.

사고 발생 당일인 12일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은 베이징에서 열린 ‘공자학원 대회’에서 105개 국가 2000여 공자학원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화와 우애’를 말하며 더불어 사는 지혜로서의 공자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13일 베이징의 한국대사관 건물이 공기총으로 추정되는 총기류에 의해 피격을 당했다.

 대사관 내 경제동(棟) 휴게실의 유리창이 공기총 탄알로 보이는 쇠구슬 공격을 받아 구멍이 뚫리고 사방으로 금이 갔다. 한국 정부의 주권을 상징하는 대사관이 공격을 받기는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이다. 99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공습으로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이 피격돼 3명의 중국인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국 시위대는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지난해 9월 일본이 중국 어민을 나포했을 때 중국인은 톈진(天津)의 일본국제학교로 돌을 투척했다. 그러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공기총 공격은 달걀이나 돌 투척과 같은 단순 시위를 넘어선 도발 행위에 가깝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대내적으로 강조해 온 게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에 걸친 치욕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이 때문에 틈만 나면 당시 중국에 아픔을 안겼던 서구와 일본을 단골 메뉴로 공격한다. 환구시보가 그런 보도의 선두에 서 있다. 지극히 상업적인 환구시보는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로 부수를 늘려 왔다. 이것이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등과 같은 환구시보의 보도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환구시보의 보도가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효용성이 있어 용인해 온 측면이 있다. 민족주의 감정을 배출하는 한 통로로, 또 외국에 중국의 분노를 전하는 매개로서다.

그러나 도를 넘어선 보도와 이로 인해 중국 일반인이 오도되는 것을 이제는 막을 때가 됐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 4세대 지도부는 인근 국가와의 외교와 관련해 삼린(三隣)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목린(睦隣, 화목하고)·안린(安隣, 편안하며)·부린(富隣, 부자가 되게 돕는다) 정책이다. 지금 중국에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목린의 회복이다. 그 목린의 회복은 중국 당국이 고(故) 이청호 경사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나토 오폭(誤爆) 사건 때 후진타오 당시 국가부주석은 미국에 두 가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과와 재발 방지다. 한국의 현재 바람은 그때 중국의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한·중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수천 년에 걸친 한·중 우호가 일부 책임 없는 언론과 이에 흥분한 일부인에 의해 깨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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