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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밸리'조성…대덕인들 뭉쳤다

중앙일보

입력

질적 변화의 시기 맞은 대덕

대덕밸리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아무래도 큰 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다. 사장단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지역 기관장들은 나름대로 기존 모임의 사업 영역을 벤처 지원 쪽으로 확대해 가고 있다. 학계 등을 주축으로 한 포럼 형식의 회의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73년 대덕연구단지 설립 이후 최대의 용트림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덕 사람들은 이제 대덕이 질적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축은 아무래도 벤처기업 CEO들. 서로 만나 활발히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정·관계 인사, 지역 유지, 금융권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서울의 테헤란밸리가 다소 주춤하면서 갈 곳을 잃은 투자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력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지금 대덕밸리 벤처 기업들을 한데 묶는 모임을 추진 중이다. 오는 8월 11일이면 ‘21세기 대덕벤처 패밀리’란 이름으로 결실을 맺는다. 이 패밀리는 그 동안 소규모로 산재해 있던 대덕지역 벤처기업 모임을 통합한 것이다. 대덕지역 연구원 출신의 벤처 사장 모임인 ‘대덕21세기’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출신 벤처CEO의 모임 ‘EVA’도 이번 패밀리에 합류했다. 3백여 개의 벤처기업들이 이 모임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패밀리 결성은 대덕밸리의 문제점을 벤처기업 CEO들이 같이 공감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느끼는 대덕밸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 정보도 자금도 지원시설도 전혀 없다. 21세기 대덕벤처 패밀리 추진위원회 이경수 임시회장은 이를 ‘기업 생태계’가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이곳 법무사들이 할증 증자 용어도 몰랐다고 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법무, 회계, 금융, 마케팅 등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이 전혀 없습니다. 또 벤처 캐피털들도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이 지역에서는 펀딩을 전혀 할 수 없는 실정이죠. 특히 정보가 없어요. 오죽하면 이 지역 증권회사 직원들이 저희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물어보겠어요.”

이경수 회장은 답답하다고 털어 놨다. 하지만 그는 대덕의 희망을 전문가 집단에서 찾았다. 1만6천여명의 전문가 집단이 한 곳에 모인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2단계만 거치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와 가장 닮은 곳이 이곳 대덕밸리라고 이회장은 주저 없이 말했다.

21세기 대덕벤처 패밀리는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가장 주안점을 둔다. 출범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전과 충남·북에 퍼져 있는 벤처 기업들을 온라인으로 묶는 일. 이들 기업들에 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서울의 벤처 캐피털, 세무, 회계, 마케팅, M&A 컨설팅 등에 적극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각 회원사들 끼리는 공동 구매사업, 상호 기술자문과 지원 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도 세워두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의 파트너 관계 정립에 전력을 투구하겠다는 복안이다. 대기업과 벤처 기업은 경쟁관계나 적대관계가 아니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대기업과 파트너 관계를 맺기 위해 접촉 중이다. 삼성전자가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이곳 대덕밸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벤처기업 10여 곳을 임원진들이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21세기 대덕벤처 패밀리가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는 쪽은 군수분야다. 전쟁의 개념이 뿌리째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대편 네트워크를 죽이고 메인 컴퓨터를 해킹하며 컴퓨터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것이 가장 먼저 진행되는 상황으로 전쟁 시나리오가 바뀌었다. 그러므로 무기체계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게 대덕밸리 사람들의 생각이다. 제4군으로 정보군이 창설되면 재입대하겠다는 각오로 군수 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패밀리 준비를 하면서 임원진들은 이미 국방부 차관과 이 문제를 두고 두 번 면담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국방부 측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밀리 측은 이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사흘간 대전 무역전시관에서 국방 관련 제품과 기술을 전시하는 ‘국방 마트’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벤처 기업 발전을 위한 공론의 장

대덕밸리를 이끄는 또 하나의 중대한 모임의 축은 21세기 벤처 플라자. 벤처기업 발전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든다는 목표로 지난 5월 말 설립됐다. 벤처 플라자에는 대덕지역뿐 아니라 천안권·청주권의 벤처기업, 대학, 연구소, 지방자치단체 등 3백40여개 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회장은 충남대 무역학과 이영덕 교수. 이회장은 서울의 포이, 송파, 서초동 지역 벤처단지를 조성하는데 주역을 담당한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그레이트(Great) 대덕밸리’를 주창한다. 대덕밸리가 대덕지역의 벤처기업으로 한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천안, 아산, 서산권을 아우르는 천안권과 청주권을 연결, 거대 밸리로 조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벤처 플라자 측은 기존의 제조기업을 기술중심의 대덕 벤처기업과 접목시키는 것을 가장 큰 밑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전통적 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역할을 벤처 기업이 담당해야 하므로 제조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접목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벤처 플라자 이영덕 회장은 “테헤란밸리의 시각으로 대덕밸리를 보아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한다. 대덕밸리는 기술 지향적인 벤처와 시장 지향적인 전통산업이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벤처밸리라는 것이다.

대덕지역 기관장들도 대덕밸리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76년도에 결성된 대덕연구단지 기관장 협의회(회장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가 그 주체. 기관장 협의회는 지금까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저 기관장들의 친목 모임 위주였고 간혹 연구단지 내에 현안 사항이 있으면 한데 모여 의견을 주고받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모임이 올 초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덕이 종합첨단산업특구로 거듭 나기 위해 기관장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힘을 결집하고 나섰다. 우선 정부 출연 연구소, 민간기업 연구소, 벤처기업, 공공기관, 교육기관 등 총 50개 기관의 기관장들은 단지발전위원회, 대외홍보위원회, 국제협력위원회 등 3개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 위원회 활동을 통해 논의된 각종 발전방안들을 정부에 건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특히 기관장협의회는 그 동안 대덕연구단지에서 나온 연구의 결과물들이 상품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 아래 각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넓은 부지에 벤처기업 창업성장센터를 건립, 벤처기업들에게 임대해 준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연구원 내 유휴부지에 연면적 8천평, 5층 규모의 하이테크 센터를 내년 5월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이 센터에는 40여개의 벤처기업이 입주하게 되며 특히 벤처캐피털회사와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경영지원실도 구성돼 입주기업들을 돕게 된다. 이같은 창업성장센터는 앞으로 이 지역 각 기관에 추가로 건립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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