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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1·2루, 4번타자 번트 시키는 ‘和야구’ 동화돼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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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08면

오사카 인근 효고현에 있는 고시엔 야구장은 일본 야구선수라면 일생에 꼭 한 번 서 보고 싶어하는 ‘성지’다. 2006년 9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던 이승엽(왼쪽 둘째)이 고시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홈런을 날리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따끈따끈한 화제는 이대호의 일본 진출일 것이다. 그의 일본행에 극적인 재미를 더하려고 그랬는지 이승엽이 귀국했다. 떠나는 이대호에게는 웅비의 기개가 느껴지고, 아시아의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운 국민타자의 귀국은 다소 쓸쓸하다. ‘실패’라는 평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쫓기듯 현해탄을 건너온 이승엽에게 일본 야구는 좌절이었을 것이다.

일본 가는 이대호 ‘야큐(野球)’를 알고 떠나라 

좌절의 당사자는 이승엽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정민태·정민철·이종범·이병규·이범호·김태균 등 한국 야구의 큰 별들이 일본 야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일본 야구는 한국 야구와 다르다고.

일본 야구를 흔히 ‘현미경 야구’라고 말한다. 타자의 미세한 발동작의 변화에서 기다리는 구질을 파악해 내고, 사소한 투수의 손동작에서 던질 공을 간파해 내는 정밀함과 집요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일 야구의 다른 점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있다. 바로 정신의 차이다. 한국 야구의 별들이 좌절의 상처를 안고 돌아선 데에는 이 정신의 간극이 일본도(日本刀)처럼 스쳤기 때문인지 모른다. 정신의 차이란 정신력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야구 선수의 정신력은 일본인들도 인정할 정도로 높고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은 야구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가리킨다.

한·일 야구의 차이를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고교야구 팀의 숫자다. 4000개가 넘는 팀 수와 17만에 달하는 등록 선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위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압도적인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 부러운 것은 그들에게 야구의 성지(聖地)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고교야구 선수 중 고시엔(甲子園)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지역 예선을 거쳐 8월의 불볕더위 속에서 벌어지는 까까머리 고교생들의 야구 시합은 단순한 게임의 차원을 넘어선다. 일본인에게 고시엔은 젊음·희망·노력·동료애의 기호들이다. 1회전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눈물을 훔치며 고시엔 구장의 흙을 신발주머니에 담을 때 시청자들도 따라 운다. 그럴 때 야구는 감동이 된다. 거기서 일본인들은 야구의 정신이 있음을 직감한다. 이는 곧 믿음으로 바뀌고 믿음은 종교가 된다.

실제로 일본 사람들은 야구의 신이 있다고 믿는다. 범인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과 궁극적인 지향점은 모두 신으로 화(化)한다. 학문의 신이 있고, 농사의 신이 있으며 심지어 스시(壽司)의 신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야구장에 들어서는 선수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다. 야구에 대한 감사와 야구를 알게 해달라는 염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야구의 신이 가르치는 것이 ‘와(和)’이다.

‘와’는 우리말로 번역이 곤란한 일본 특유의 집단 이데올로기다. ‘와’의 사전적 의미는 ‘사이좋게 지내다’ ‘다투지 않는다’ 정도지만 이것이 모여 크게 된 것이 야마토(大和)이며, 이는 일본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 야구는 ‘와’를 통해 미국 야구와 결별한다. 베이스볼(baseball)과 야큐(野球)를 엄연히 다르다고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던지고 치고 달리는 운동 형식은 다를 것이 없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운동 원리는 철저히 ‘와’에서 찾는다. 개인의 플레이는 팀을 위할 때 의미를 가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과 동료를 믿어야 한다.

‘와’의 야구는 1점의 무게를 중시한다. 팀플레이를 통해 얻는 한 점은 ‘와’의 현현(顯現)과 다름없다. 무사 1, 2루의 찬스에서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것도 ‘와’이며,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이대호에게 체중감량을 주문하는 것도 ‘와’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평균치를 웃도는 체중과 튀어나온 복부도 일본인의 눈에는 ‘와’의 미세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호는 아직 플레이를 시작하기도 전에 견제구를 받고 있는 셈이다.

‘와’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배우는 일본인 특유의 가치인 까닭에 이를 저해하는 선수에게 관용은 없다. 외국인 선수에게는 더 매몰차다. 슬럼프를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다. 용병은 ‘와’의 가치를 쉽게 공유하지 못하는 외인(外人)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사람들은 외국인 선수를 ‘가이진(外人)’이라고 부른다.

‘와’의 가치는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라는 이중화법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인들은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읽힐 수 있지만 그만큼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겉으로 드러난 어법과 뉘앙스를 통해 진심이 무엇인지를 읽어내야 하는 고역을 이대호는 무수히 겪을 것이다. 이대호는 경상도 사나이여서 더욱 그럴 터이다.

겉과 속이 다른 화법은 투수들의 투구 패턴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투수들은 대부분 변화구를 주무기로 삼는다. 혼네를 숨기고 다테마에로 승부하는 일본 투수의 구질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포크볼이다. 공 반 개 차이의 자로 잰 듯한 제구력에 한국의 기라성들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당했던가. 변화구의 제1덕목은 컨트롤이며 컨트롤은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일본 야구를 ‘감성 야구’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2할9푼9리와 3할의 차이에서 타자의 미학과 재미를 찾는 것이 일본의 프로야구다. 특히 일본의 야구팬들은 기록에 집착한다. 우리나라에도 소설과 영화로 소개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주인공은 수십 년 지난 선수들의 타율과 방어율, 심지어 좌·우 투수 간의 타율 차까지 줄줄이 외우고 있을 정도다. 팬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전력분석관이 쌓아놓았을 기록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록이 모이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는 곧 분석의 자료가 된다. 현미경 야구는 이 감성·기록·분석의 3박자가 어우러진 일본 야구의 방법론이다. 원래 감성은 집요한 구석이 있어 상대방의 약점을 그냥 두지 않는다. 이대호의 약점은 벌써 간파되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대호는 매 타석 류현진이나 윤석민과 대결해야 한다.

오사카로 날아갈 이대호에게 필요한 것은 섬세함이다. 이대호는 더 섬세해져야 한다. 그에게서 감수성이 느껴지는 배팅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왕 국경을 넘기로 작정했다면 야구의 노마드가 되어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진출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경계를 가로지르는 노마드의 보람이 있을 것이고, 언젠가 금의환향할 때 풀어놓을 보따리가 있을 것이다. 이대호가 다시 부산 갈매기로 날 때 타격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겼으면 좋겠다.



김정효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에서 체육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포츠 현상에 대한 철학적·사회학적 고찰에 매진하며, 한국체대·서울대 박사 과정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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