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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소송, 상식이 통하는 재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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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

지난 12월 6일 폐암으로 사망한 경찰공무원 박모씨의 유족이 국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이 있었다. 2000년 박씨가 30년 넘게 흡연하다가 폐암으로 사망하자 유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시 재판부는 폐암의 원인이 흡연이므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유족은 담배회사와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국가와 담배회사)가 흡연행위를 조장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씨가 1969년 군에 입대했을 때 매일 담배를 무료로 배급받았다. 이 결과로 비흡연자였던 박씨는 흡연자가 됐고, 니코틴 중독자가 됐다. 그 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알고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국방부는 1980년대 초까지 담배를 무료로 배급했으며, 무상 담배가 없어진 뒤에도 2008년까지 면세 담배를 공급해 군인들이 싼값에 흡연할 수 있도록 해왔다.

 재판부는 또한 흡연을 시작했다고 누구나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흡연자가 필연적으로 암의 발병으로 이어짐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흡연자의 70%는 금연을 원하지만 의지만으로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 중 1년 뒤까지 금연을 지속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 그만큼 금연은 힘든 것이다. 재판부의 말대로 모든 흡연자가 암으로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버스 추락사고가 나도 누구나 죽지는 않으니 사고를 낸 버스회사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담배회사도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가 해롭다는 경고문이 처음으로 들어간 시점은 76년이었다. 이때의 경고 문구는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였다. 이 문구는 담배를 ‘적당히 피우자’는 말이지 담배의 해로움을 알려주는 경고라고 볼 수 없다. 그나마 제대로 된 경고문이 들어간 해는 95년으로 담배가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의 경고문도 작은 검정 글씨로 적혀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흡연자의 80%는 경고문이 금연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선진국들의 담뱃갑은 끔찍한 흡연의 결과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세다.

 한편으로 담배회사들은 자신들이 경고문을 실음으로써 담배의 해로움을 알리는 책임을 다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담배회사는 법에 강제된 사항을 수동적으로 따랐을 뿐이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담배의 해로움을 한 번도 국민에게 스스로 나서서 알린 적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재판에서까지도 박씨가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외국에서는 어떠한가. 미국에서는 담배 소송이 50년대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담배회사의 전략이 먹혀 들어가는 듯했지만 곧 담배회사가 흡연자들을 중독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고, 담배의 해로움을 은닉해 왔는지 알려지면서 담배회사들은 온갖 소송에서 패소를 거듭하고 있다. 한 예로 98년 미국 48개 주의 법무장관들은 자국 내 6대 담배회사들을 대상으로 흡연 피해로 의료비를 지출했으니 보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담배회사는 이에 굴복해 25년간 2460억 달러(약 275조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개인들도 수많은 소송에서 승소했다. 2010년 플로리다주의 아만다 홀 여사는 14세 때부터 흡연하다가 암으로 사망한 남편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해 500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1750만 달러의 징벌적 보상금을 받아냈다. 이 소송은 플로리다에서 진행되는 담배 소송 2000건의 하나다.

 이제 대한민국 사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매년 무려 5만 명 이상의 국민을 암과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과 폐질환으로 사망케 하는 담배회사에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흡연자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금연하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때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