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찾아 삼만리? 진료 기다리다 때 놓치면 더 큰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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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얼마 전 아는 사람이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세브란스병원 A교수가 명의(名醫)라고 들었는데 맞느냐. 그분한테 외래진료를 받으려면 두세 달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는 아픈 동생이 하루라도 빨리 진료를 받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환자의 병이 그리 심각한 게 아니었다. 대학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될 성 싶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몇 달 기다리기보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의 의사를 찾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권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어떡하든 A교수한테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진료 시기를 당겨줄 길이 없어 몹시 난처했다. 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이런 일을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환자들에게 명의에 대한 환상이 많은 것 같다. 중국의 명의 화타나 우리나라 허준 선생 때문인지 환자를 보기만 해도 바로 진단이 나오고, 다른 의사는 모르는 비방(秘方)을 꺼내 단번에 치료하고 심지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모습을 기대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현대의학에 이런 비방이 있을 리가 없다. 현대의학은 과학이다. 표준화된 지침을 따른다. 이 지침은 체계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고 충분한 사례를 통해 객관화된 기준이다. 어떤 의사든 이 지침에서 벗어나는 치료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환자를 많이 진료하다 보면 경험이 쌓인다. 그러면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수술한다는 게 의료계의 정설이다. 그런 사람이 명의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몇 달이 넘게 기다리면서 명의를 찾는 게 실익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분명 병은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현명한 소비자의 길인지 자명하다. 어떤 명의는 얼굴 한번 보기 위해 길게는 1년, 수술은 2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병원이나 의료서비스 정보가 많이 개방돼 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에서 질병별로 병원들의 실력을 평가해 공개한다. 심평원의 평가 분야가 점점 늘어난다.

 좋은 병원, 좋은 의사의 기준은 환자를 빨리 적절한 치료를 통해 생활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효율적인 진료예약 시스템을 고안하고 조금이라도 대기시간을 당기는 데 힘써야 할 때다.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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