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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인생 굴곡, 신의 배려인가 심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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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① 운명의 수레바퀴(1883), 에드워드 번존스(1833~1898) 작, 캔버스에 유채, 200x100㎝, 오르세 미술관, 파리

요즘 외신에서는 2008 장애인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네덜란드 핸드사이클 선수 모니크 판 더 보스트가 화제다(사진 ②). 하반신마비였던 그녀가 기적처럼 회복돼 지난달 말 일반 사이클 명문 프로팀과 계약한 것이다.

그녀는 여러 번 불운을 겪었다. 10대 때 발목 수술을 받다 신경이 손상돼 한쪽 다리가 마비됐다. 그 후 핸드사이클(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사이클) 선수로 활약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림픽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마비가 하반신 전체로 퍼졌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출전해 은메달 두 개를 따냈다.

지난해 초에는 훈련 중 강한 충돌사고를 당했다. 또 하나의 불운인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여파로 다리 감각이 돌아왔다! 동양의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격언, 그리고 서양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떠오르는 영화 같은 실화다.

로마 신화에서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수레바퀴의 테두리에는 수많은 인간의 운명이 붙어 있다. 수레바퀴 꼭대기에 있는 인간은 행운의 절정을 누리는 중이고, 바닥 쪽에 있는 인간은 불운의 늪을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언제까지나 유지되지는 않는다. 여신이 심심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수레바퀴를 돌리기 때문이다. 한 번에 조금 돌릴 수도 있고 획 180도 돌릴 수도 있다. 또 그녀가 수레바퀴를 언제 돌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② 2008 장애인 올림픽 핸드사이클 은메달리스트 모니크 반 더 보스트가 다리를 회복한 후 사용하던 휠체어를 뒤에 놓은 채 서 있다. [AP]

 영국 라파엘전파(Pre-Raphael ite)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의 작품(그림 ①)은 이런 개념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거대한 운명의 여신 앞에 인간은 조그만 존재에 불과하다. 왕관을 쓰고 홀을 든 자는 한때 수레바퀴의 꼭대기에서 왕의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신이 바퀴를 돌리면서 다른 자에게 머리를 밟히며 추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발 아래에는 월계관을 쓴 자가 있다. 월계관은 전통적으로 경기의 승리자나 시인의 상징인데, 이 사람은 아마 시인인 듯하다. 눈을 감고 수레바퀴에 몸을 맡긴 다른 자들과 달리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수레의 실체를 밝히려 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운명의 수레바퀴(라틴어로 Rota Fortunae, 영어로 Wheel of Fortune)’는 운명의 변화무쌍함과 변덕스러움을 상징한다. 이 개념은 중세 때 특히 유행해서 중세 백과사전에 삽화로 많이 나왔다(그림 ③). 또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1343~1400)가 쓴 영국 중세문학의 걸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에 수없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 설화문학은 캔터베리 대성당을 참배하러 가다 한 여관에 우연히 모인 31명의 순례자가 번갈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순례자들은 기사, 수녀원장, 변호사, 상인, 농부, 대학생, 면벌부(면죄부) 팔이 등 그야말로 당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들이 하는 24편의 이야기도 고상한 기사 로맨스부터 음담패설까지 각지각색이다. 이 중 ‘운명의 수레바퀴’가 특히 많이 언급되는 것은 기사의 이야기다.

 사촌 간인 두 젊은 기사 팔라몬과 아르시테는 아테네 왕 테세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지만 여기에서는 중세 영주의 모습이다)의 포로였다. 그들은 감옥 창문으로 왕의 아름다운 처제 에멜리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은 후 왕은 정식 토너먼트를 열어 거기서 이기는 기사를 에멜리와 결혼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무예와 용기로 접전을 벌였으나 운명의 여신이 손을 들어준 쪽은 아르시테였다. 하지만 곧이어 운명의 여신은 바퀴를 거꾸로 돌렸다. 아르시테가 승리를 거둔 후 기쁨의 행진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치명상을 입고 숨을 거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죽음에 에멜리와 왕은 물론 경쟁자 팔라몬까지 충격을 받고 모두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다. 다만 세상의 진리를 터득한 왕의 늙은 부친만이 평정을 유지했다. 왕은 아버지의 조언과 세월의 흐름으로 슬픔을 삭인 후 여전히 우울하게 지내고 있는 팔라몬과 에멜리를 불렀다. 그리고 “ 두 개의 고통을 하나의 행복으로 만들자”며 결혼시켰다.

③ 운명의 수레바퀴(12세기), 백과사전 ‘호르투스 델리키아룸(Hortus Deliciarumo·기쁨의 정원)’ 삽화

 이 같은 운명의 반전에는 어떤 인과응보도 개입돼 있지 않다. 두 기사는 모두 기사도 정신에 충실했고 에멜리에 대한 사랑의 강도에도 차이가 없었다. 아르시테는 비명횡사를 해도 마땅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이처럼 세상은 아이러니로 가득한 것이다.

다만 나중에 행복을 얻은 팔라몬의 경우 복 받아선 안 될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르시테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 기회를 타서 에멜리를 차지할 야비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왕도 나중에 그를 에멜리와 결혼시킨 것이었다. 왕은 그때 말한다. “필요한 덕은 베풀고, 피할 수 없는 것들(특히 늦든 빠르든 인간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죽음)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롭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새옹지마’의 서양판이라 할 수 있다. 한(漢)나라 때 철학서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새옹(북쪽 국경 지방의 노인이라는 뜻)은 아끼는 말이 국경 너머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을 때 “이것이 도리어 복(福)이 될지 모른다”며 속상해하지 않았고, 얼마 후 그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이것이 도리어 화(禍)가 될지 모른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그의 염려대로 그의 아들이 새 말을 타다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또 “그것이 복이 될지 모른다”며 슬퍼하지 않았다. 1년 후 오랑캐가 쳐들어와 마을 청년들은 모두 싸움에 나가야 했고 대부분 전사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여서 전투를 피해 살 수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나 ‘새옹지마’는 운명의 변덕스러움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갑자기 다시 위로 올라갈지 모르니 말이다.

문소영 기자

지금봐도 배꼽 잡게 하는 풍자·유머 달인
『캔터베리 … 』의 작가 초서

초서(사진)는 중세 문인 대다수가 그랬듯 군인과 외교관 등 다양한 공직을 거쳤다. 그의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하나씩 이야기를 하는 형식부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캔터베리 이야기』는 『데카메론』보다 각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 다. 이를테면 탁발수도사가 탐욕스러운 소환관리가 악마에게 끌려가는 코믹한 이야기를 하자, 소환관리가 맞받아치며 지옥에 가봤더니 사탄의 엉덩이 밑에 탁발수도사가 수없이 깔려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이 이야기들은 현대에 봐도 상당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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