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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주범은 정부, 재벌은 공범"

중앙일보

입력

"재벌은 경제위기의 주범이 아니다. 주범은 정부였고, 재벌은 공범(共犯) 내지 종범(從犯)에 불과했다."

유승민(劉承旼)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최근 펴낸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 (비봉출판사 간)라는 저서에서 1997년 외환위기의 책임소재를 이렇게 정리했다.

劉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14년간 재벌정책을 연구한 뒤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관과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거쳐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재벌문제 전문가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핵심 브레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재벌이 환란(換亂)을 초래했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재벌책임론' 과 현 정부의 재벌정책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劉소장은 "경제위기의 책임규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생긴 정부.은행.재벌간의 특수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며 "정부가 은행을 대리인으로 삼아 주도역할을 했던 만큼 주범은 바로 정부" 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도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 전제, "그러나 정부가 기업부도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고를 바닥낸 허술한 위기관리 능력 등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고 지적했다.

그는 "재벌책임론은 이제 균형감각을 찾아야 한다" 며 "재벌이 많은 문제점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을 버릴 필요까지는 없다" 고 강조했다.

그가 꼽는 재벌 문제의 본질은 ▶무뎌진 기업가 정신▶취약한 핵심능력▶부족한 위기관리 능력 등이다.

따라서 재벌책임론자들이 ▶선단식 경영▶오너중심 경영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재벌을 해체하자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재벌해체론이 현 정부의 재벌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 진단하고, "재벌해체와 맥을 같이하는 '독립경영.전문경영' 이 경쟁력 강화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고 주장했다.

劉소장은 현 정부의 재벌정책은 ▶경제발전의 큰 그림 아래서 어떻게 재벌을 활용할지 비전이 없으며▶큰 그림이 없다 보니 예측성이 부족하고▶법과 시장보다는 약속과 강압이 우선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향후 재벌정책의 과제로는 ▶재벌금융뿐 아니라 관치금융도 개혁의 대상으로 하고▶기업지배구조는 서구식을 강요하기보다는 한국형의 자생적 발전을 유도할 것 등을 꼽았다.

또 ▶오너.임원 등의 불법행위는 엄정히 처벌하되 검찰의 중립을 전제로 하며▶재벌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는 대신 법원의 힘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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